의녕옹주(宜寧翁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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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66년(세조 12) = ?]. 조선 제1대 임금인 태조(太祖)의 딸로 옹주. 어머니는 주찬덕(周贊德)이며, 부마(駙馬)는 개국공신인 개성 이씨(開城李氏)로 개천위(啓川尉)이등(李登)이다.

출생 및 혼인생활

태조와 주찬덕의 딸로 태어난 의녕옹주는 태조가 매우 아끼는 옹주였는데, 이덕시(李德時 : 이개(李開))의 아들 이등과 혼인하였다.(『세종실록』 18년 2월 2일) 이 혼인으로 개천위에 봉해진 이등은 그 성품이 부지런하고 조심스러워서, 만년에도 항상 조알(朝謁)의 예를 폐하지 않았다.(『세조실록』 3년 7월 1일)

한편 1400년(정종 2) 이등이 장군이 되었는데, 장군 이상이 모여 군사에 의논을 하던 장군방(將軍房)의 방주(房主) 박동미(朴東美)와 장무(掌務) 김성미(金成美)가 그의 족보가 내료(內僚)에서 나왔다면서 적임자 여부를 판단하는 회좌회좌례(會坐回坐禮)를 행하지 않았다. 태조가 이를 듣고 노하자 당시 임금이던 정종(定宗)이 박동미 등을 탄핵한 후, 장군방을 혁파하였다.(『정종실록』 2년 7월 2일)

1419년(세종 1)에는 전 지평주사(知平州事)평득방(平得邦)이 자신의 딸을 이등의 아들 이선(李宣)과 혼인시키기로 약속하였다가 이등이 가난하다며 사절한 일이 있었다. 이때 세종은 의녕옹주와 그 가족을 아끼는 마음을 드러내고 평득방을 하옥시키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년 2월 20일)

묘소와 후손

의녕옹주의 묘소는 부마 이등의 묘소와 함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85번지에 있다.

의녕옹주는 이등과의 사이에서 4남 3녀를 두었다. 1남은 이황(李宺)이며 2남은 문량공(文良公)이선이고 3남은 이림(李穼), 4남 이효(李孝)이다. 1녀는 정소(鄭韶)와 결혼하였고, 2녀는 군수(郡守)김맹형(金孟衡)과 혼인하였으며, 3녀는 직장(直長)이만생(李晩生)에게 출가하였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지두환, 『태조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