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판관(應辦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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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를 때 필요한 물품과 시관의 식사 등을 제공하던 차비관의 일종.

개설

응판관은 시험의 각 단계마다 시험장의 안팎에서 문과의 원활한 실시를 위하여 필요한 온갖 일을 도맡아 하는 차비관(差備官)에 속하였으며, 문과 설행에 필요한 각종의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고, 시관 등에게 매끼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내용과 특징

조선시대 시관은 기능상 크게 고시관(考試官)·감시관(監試官)·차비관(差備官)으로 분류되었다. 고시관이 출제와 채점을 맡고, 감시관이 부정 적발의 역할을 맡았다면, 차비관은 시험의 각 단계마다 시험장의 안팎에서 문과의 원활한 실시를 위하여 필요한 온갖 일을 도맡아 하였으며, 하는 일에 따라서 그와 관련된 여러 관서에서 동원되었다.

응판관은 차비관 중의 하나로, 문과가 실시되는 과정은 물론 급제자를 발표하는 의식, 급제자를 축하해 주는 각종 의식 등에 필요한 각종의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고, 시관 및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끼니마다 식사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후기 19세기 자료인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의하면, 이때 제공된 식사는 밥·탕·국·구이·자반·젓갈·나물·김치·간장 등이었으며, 관련 물품을 조달하는 관서로는 제용감(濟用監)·사도시(司䆃寺)·장흥고(長興庫)·사재감(司宰監)·사복시(司僕寺)·선공감(繕工監)·상의원(尙衣院)·내섬시(內贍寺)·군기시(軍器寺)·의영고(義盈庫)·혜민서(惠民署)·군자감(軍資監)·장원서(掌苑署)·와서(瓦署)·풍저창(豊儲倉)·전의감(典醫監)·광흥창(廣興倉)·교서관(校書舘)·내자시(內資寺)·예빈시(禮賓寺)·사섬시(司贍寺)·사포서(司圃署)·사축서(司畜署)·조지서(造紙署) 등이 있었다. 이 관서들은 문과가 실시될 때 필요한 물품을 돌아가면서 제공하였다.

변천

문과의 응판관을 차출하는 데 동원된 관서를 알 수 있는 실록 사료는 1699년(숙종 25) 증광시(增廣試)의 복시(覆試)를 실시할 때 한성부의 서윤(庶尹)김인지(金麟至)가 응판관에 임명되었다는 것이 유일하다. 특히 이 증광시는 시관과 응시생의 부정으로 기묘과옥(己卯科獄)으로 연결되었는데, 김인지가 응판관의 역할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증광시의 복시에 응시하여 응판관 서리를 통하여 ‘봉미(封彌)를 바꾸어 급제를 도적질하였다.’는 죄가 상세히 서술되었던 것이다(『숙종실록』 25년 12월 30일).

그러나 이후 사료인 『만기요람』에 의하면, 문과의 응판관을 담당하는 관서 역시 예조에서 미리 정하여 돌아가면서 맡도록 한 것으로 보이는데, 관련 관서는 호조(戶曹)와 공조(工曹), 그리고 호조의 속아문(屬衙門)인 군자감·광흥창·사재감·사복시·제용감·사도시·장흥고·양현고 등이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만기요람(萬機要覽)』
  • 차미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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