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지리(陰陽地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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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로 대별되는 지리를 음양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

개설

지리는 크게 산과 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풍수지리에서 산수는 자연계의 사물을 음과 양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음양사상을 빌려 음양으로도 부른다. 산은 움직이지 않고 정적인 존재로 있으므로 음으로 구분하고, 물은 늘 움직이는 동적인 존재로서 양으로 구분한다. 산을 다시 세분하면 큰 산을 음으로 구분하고 작은 산을 양으로 구분한다. 음양은 서로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산수는 풍수지리에서 상호간의 조화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꼽는다.

내용 및 특징

산수로 대별되는 풍수지리에서는 생기를 간직하고 내려오던 용맥이 결혈한 장소를 찾아 음택 혹은 양택으로 활용하여 사람들의 미래를 밝게 하자는 것이 핵심인데, 용맥이 천 리 만 리를 달려 내려오던 진행성을 물아 경계를 지어 줌으로써 최종적으로 형국이 완성된다는 이론을 펼친다. 즉 산과 물은 음과 양의 존재로서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두 부분 모두가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활용 가치가 있는 입지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일반적인 지리학이나 지형학과는 매우 다른 논리로서 음양지리에서 산수는 각각의 개별적인 기능과 용처를 지닌 범주로 파악된다.

조선시대에도 음양을 풍수지리의 근간으로 삼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그것은 음양지리 서적이 아래와 같이 다양한 점에서도 확인된다. 당시에는 『청오경(靑烏經)』과 『장서(葬書)』를 비롯하여 『동림조담(洞林照膽)』·『명산론(明山論)』·『호순신(胡舜申)』·『감룡경(撼龍經)』·『의룡경(疑龍經)』·『착맥부(捉脈賦)』·『탁옥부(琢玉斧)』 등과 같은 수많은 음양지리서가 유행하였다.

이 문헌들은 조선시대 삼정승을 포함한 대소 관료 및 풍수학자들이 음택과 양택의 입지를 설명하고 취사, 선별하는 가운데 그 준거로 제시했던 서적들이다. 이 가운데 『호순신』과 같은 것은 조선시대 내내 지관 선발의 과시과목이었음에도 그 진위를 의심받아 심지어 멸만경(滅亡經)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조선시대에 음양지리의 내용이 전면적으로 통일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문헌에서 언급한 음양지리의 내용은 다양하고 각론을 위주로 한 설명이 대부분이지만 대체로 물형론을 포함해서 형세를 논하는 형기론, 좌향(坐向)을 논하는 이기론, 택일을 주제로 한 택길 또는 선택론 등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위와 같이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음양지리는 일반적인 행정 업무와는 달리 그 활용 목적과 결과 여부에 의한 책임이 크게 따르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풍수지리가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상소문을 올릴 경우 거의 모두 자신의 견해와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풍수 문헌을 전거로 내세웠다.

변천

음지와 양지를 의미하던 음양은 기에 대한 인식이 덧붙여져 점차 자연만물의 상대적 이치를 뜻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사상과 문화, 정치 방면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음양은 풍수지리에서 음양의 기를 내포한 산수의 동정을 의미하는데, 『청오경』에서는 음양의 부합으로 내기와 외기가 생기와 형상으로 드러나 자연히 풍수지리가 성립한다고 설명하였다. 『장서』에서는 바람, 구름, 비, 생기 등은 모두 음양의 변화라 하였고 서문에서는 ‘청오선생이 지리의 음양에 밝았다’고 하여, 음양지리가 곧 풍수지리임을 말하였다.

『청오경』과 『장서』 모두 음양의 기를 중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거의 동시대 문헌인 『황제택경』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문헌에서는 일 년의 음양의 기의 변화를 주시하고 특유의 방위관을 적용시켜 양택 판별법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양택을 다시 음택과 양택으로 구분하여 음양이 풍수지리의 확실한 용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음양지리는 일반적으로 풍수지리를 의미하지만, 작게는 택일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택일 또한 길한 날을 고르는 것으로서, 현재 중국에서는 택길 또는 선택, 선택론이라 하여 연구되고 있다. 조선시대 태종과 세종시기에도 음양지리는 장례 제도나 택일에 이르기까지 풍수지리의 전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일찍이 태종은 음양지리의 술법이 언제 시작되었고, 중국에도 그러한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동진 시기에 도간(陶侃)이 음양지리술을 시작했다는 회답을 듣는다(『태종실록』 18년 2월 7일). 여기서는 음양지리가 장일에 관계된 것으로서 사용되었다면, 세종시기에는 전반적인 풍수지리의 의미로서 음양지리가 언급되어 있다(『세종실록』 26년 윤7월 8일)(『세종실록』 27년 1월 1일)(『세종실록』 28년 6월 18일).

참고문헌

  • 『장서(葬書)』
  • 『청오경(靑烏經)』
  • 『협기변방서(協紀辨方書)』
  • 『호선생음양비용(胡先生陰陽備用)』
  • 『호수경(狐首經)』
  • 『황제택경(黃帝宅經)』
  • 김혜정, 『중국 고전의 풍수지리 사상』, ㈜한국학술정보, 2008.
  • 장성규·김혜정, 『완역 풍수경전』, 문예원, 2010.
  • 호순신 저·김두규 역해, 『지리신법』, 비봉출판사, 2004.
  • 徐善繼·徐善述, 『地理人子須知』, 臺灣 竹林書局, 2007.
  • 鄭同 点校, 『堪輿』, 中國 華齡出版社, 2008.
  • 장성규, 「『장서』의 문헌적 연구」, 『중국학논총』제27집, 2009.
  • 장성규, 「『청오경』의 문헌적 연구」, 『건축역사연구』제18집, 2009.
  • 장성규·김혜정, 「『호수경』의 문헌적 연구」, 『건축역사연구』제19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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