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과(陰陽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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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천문학·지리학·명과학을 공부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잡과 시험의 하나.

개설

조선시대 잡과의 하나로 천문학·지리학·명과학 등의 전공이 있었다. 대소과의 구별이 없는 단일과로서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실시하였으며, 초시(初試)와 복시(覆試) 두 단계만 있고 전시(殿試)는 없었다. 음양과 식년시와 증광시 합격 정원은 9명으로 동일하였으며 대증광시 정원은 11명이었다.

내용 및 특징

음양과(陰陽科)는 천문학·지리학·명과학 등 3개 전공이 있었으며, 천문학이 가장 중시되었다. 1392년 입관보리법(入官補吏法)에 잡과로서 이과(吏科)·역과(譯科)·의과(醫科)·음양과가 포함되었다(『태조실록』 1년 8월 2일). 1406년(태종 6)에 유학(儒學)과 함께 무학(武學)·이학·역학·음양풍수학(陰陽風水學)·의학·자학(字學)·산학·악학(樂學) 등 10학의 하나로 설치하였다(『태종실록』 6년 11월 15일).

초시는 자·(子)·오(午)·묘(卯)·유(酉)에 해당하는 식년 전해 가을에 관상감(觀象監)의 주관 아래 실시하였고, 복시는 식년 봄에 관상감 제조와 예조당상관의 주관 아래 서울에서 실시하였다. 합격자 정원은 초시에 천문학 10명, 지리학 4명, 명과학 4명 총 18명, 복시에 천문학 5명, 지리학 2명, 명과학 2명 총 9명으로 식년시와 증광시가 동일하였다. 국가에 경사가 겹쳤을 때 특별히 실시하는 대증광시는 초시에 각 전공별로 4명, 복시에 각 전공별로 2명씩을 더 선발하였다. 천문학은 천문학 생도 이외에는 응시할 수 없었다.

시험 과목은 전공서와 『경국대전』을 강서(講書)하게 하였다. 천문학·지리학·명과학은 각각 시험 과목이 달랐다. 천문학의 경우 『보천가(步天歌)』는 외우게 하고, 『경국대전』은 보고 강독하게 하였으며,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칠정산외편』·『교식추보가령(交食推步暇令)』을 계산하게 하였다. 지리학의 경우 『청오경(靑烏經)』과 『금낭경(錦囊經)』은 외워서 강독하게 하였으며, 『호순신(胡舜申)』·『명산론(明山論)』·『지리문정(地理門庭)』·『감룡(撼龍)』·『착맥부(捉脈賦)』·『의룡(疑龍)』·『동림조담(洞林照膽)』·『경국대전』은 보고 강독하게 하였다. 명과학의 경우 『원천강(袁天綱)』은 외워서 강독하게 하였으며, 『서자평(徐子平)』·『응천가(應天歌)』·『범위수(範圍數)』·『극택통서(剋擇通書)』·『경국대전』은 책을 보고 강독하게 하였다.

각 과목은 통(通)·약(略)·조(粗)로 채점하는데 통은 2분(分), 약은 1분, 조는 반분으로 계산하여 점수가 많은 사람을 선발하였다. 성적에 따라 1등은 종8품계, 2등은 정9품계, 3등은 종9품계를 주어 관상감의 임시 관직인 권지(權知)로 임명하였다. 이미 품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1계를 더 올려 주고, 올린 품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품계와 같을 경우에는 다시 1계를 올려 주었다. 음양학은 서울에 45명의 생도가 있었으며, 전공별로는 천문학 20명, 지리학 15명, 명과학 10명으로 나뉘어 관상감에서 교육받았다. 지방에는 음양학생도가 없었다.

변천

『경국대전』의 음양과 선발 인원은 『대전회통』에 와서 명과학 선발 인원이 늘어났다. 1797년(정조 21)에 관상감 제조의 요청에 따라 명과학의 정원을 늘리도록 하여(『정조실록』 21년 11월 12일), 『대전회통』에 법규로 반영한 것이다. 음양과의 선발 인원은 『속대전』 이후 초시 8명, 복시 4명으로 늘어나 의과나 율과와 달리 최종 선발 인원이 11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조선후기에 시헌력(時憲曆)의 이해가 심화되고 시헌력을 기반으로 한 명과학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천문(天文)·지리(地理)·역수(曆數) 등의 일을 담당하는 음양관의 역할이 증대된 것과 관계가 있다. 잡과 내 위상은 1777년(정조 1)까지 역과가 으뜸이었으나 『대전통편』에서 음양과로 첫째 자리가 바뀌었다.

『속대전』 이후 음양과의 시험 과목은 전공별로 축소되었다. 천문학의 경우 『속대전』에서 『천문력법(天文曆法)』을 추가하였으며, 『대전회통』에서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시헌기요(時憲紀要)』를 추가하고 『보천가』·『천문력법』은 폐지하였다. 지리학의 경우 『속대전』에서 『탁옥부(琢玉斧)』를 추가하고 『지리문정』·『감룡』·『착맥부』·『의룡』은 폐지하였으며, 『대전회통』에서 『동림조담』·『탁옥부』를 폐지하였다. 명과학의 경우 『속대전』에서 『시용통서(時用通書)』를 추가하고 『극택통서』는 폐지하였다. 『시용통서』는 태극도설의 응용방법을 해설한 책으로 송나라 주돈이가 지었다.

명과학은 『대전회통』에서 『협길통의(協吉通義)』로 과목을 단일화하였는데 시험 방식은 책을 보고 강독하게 하였다. 나머지 명과학 시험 과목들은 폐지하였다. 이는 조선후기 서양 천문학과 시헌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정조 연간에 천문학에서는 『칠정산』을 사용하여 계산하는 대통력 추보관을 폐지하고, 시헌력법을 운영하기 위한 관직을 설치하고, 시험 과목도 개편하였다. 명과학 부분에서도 시험 과목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서운관지(書雲觀志)』
  • 『잡과방목(雜科榜目)』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중인 연구』, 이회문화사, 1999.
  • 이성무, 『한국과거제도사』, 민음사, 1997.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교육의 변화와 특성」,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13-1, 2014.
  • 이수동, 「조선시대 잡과의 음양과 연구: 택일과목을 중심으로」 ,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5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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