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현(恩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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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은진현(恩津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공주목에 속한 현이다. 조선 1397년(태조 6)에 덕은현이 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파견하였고, 1419년(세종 1)에 은진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15세기에 호수는 506호, 인구는 1,717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22명, 수호군(守護軍) 52명, 선군(船軍) 258명이었다. 1914년에 논산군에 합쳐 은진면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현으로 덕근군(德近郡), 덕근지(德近支), 득안(得安) 등으로 불렸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덕은군(德殷郡)으로 개칭하고, 지금의 관촉면 지역인 시진현(市津縣), 익산시 여산면 지역인 여량현(礪良縣), 강경읍인 운제현(雲梯縣)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고려전기에 덕은군으로 고쳤다. 시진현은 백제에서는 가지내현(加知柰縣)이라고 불렸는데, 통일신라시대에 시진현으로 고쳤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덕은군과 시진현을 공주의 속현으로 삼았다. 조선전기인 1397년에 시진현과 시진현의 임내였던 채운향(彩雲鄕)을 병합하여 덕은현으로 삼고 감무를 파견하였다. 1413년에 현감을 설치하였고, 1419년에 은진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은진현은 삼국시대에는 경기도에서 충청북도를 거쳐 충청남도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강경평야의 동북 지역을 관장하는 중심지였다. 관촉사와 은진미륵이 있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30명, 아전 45명, 지인 17명, 사령 19명, 관노 18명, 관비 16명이 있었다.

변천

1646년(인조 24)에 토적 유탁(柳濯) 등의 모반 때문에 이산현, 연산현과 함께 은산현(恩山縣)으로 통합되었다(『인조실록』 24년 5월 1일). 1655년(효종 6)에 다시 은진현으로 분리하여 복구하였다(『효종실록』 6년 1월 3일).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는 14개 면으로 구성되었고, 4,811호에 인구는 남자 7,965명, 여자 9,955명이었다. 토지는 밭 2,589결, 논 2,796결이었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공주부 은진군이 되었다가,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은진군이 되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은진군을 폐지하고 논산군에 합쳤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