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계역(銀溪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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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회양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은계역(銀溪驛)은 회양도호부의 읍치(邑治) 서쪽 5리(약 2㎞) 지점에 위치하였다. 은계역은 고려시대에도 도원도(桃源道)의 소속 역으로 존재했던 유서 깊은 역(驛)이며, 개경(開京)에서 동북면(東北面) 지역으로 향하는 교통로상의 주요한 역으로 기능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은계역은 한양에서 함경도를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상의 주요한 요충지에 위치하였다. 은계역은 은계도찰방이 상주하는 은계도(銀溪道)의 대표 역이었다.

내용 및 변천

조선시대 은계역은 남쪽으로는 회양의 신안역(新安驛), 북쪽으로는 함경도 안변(安邊)의 고산역(高山驛)과 연결되었다. 특히 은계역과 고산역 사이에는 함경도와 강원도의 경계가 되는 철령(鐵嶺)이 위치하고 있어, 은계역은 일찍부터 요충지로 중시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초기 은계도는 경기강원도정역찰방(京畿江原道程驛察訪) 소속의 역으로 편제되었다. 하지만 이후 1465년(세조 11)에 경기강원도정역찰방 관할하의 역들 중에 녹양역(綠楊驛) 등 경기도에 위치한 3역은 평구도(平丘道)로 이속되었고, 은계역을 포함하여 강원도에 위치했던 나머지 역들은 은계도로 별도 설정되었다(『성종실록』 2년 4월 11일). 은계역은 은계도찰방이 상주하는 은계도의 대표 역이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은계역은 은계도의 대표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은계역에는 역리(驛吏) 32명, 역노(驛奴) 96명, 역비(驛婢) 47명과, 대마(大馬) 2마리, 기마(騎馬) 3마리, 복마(卜馬) 11마리가 배속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은계역도 폐지되었다.

현재 북한 행정 구역으로 강원도 회양군 신계리에 해당하며, 이 지역에는 은계리, 은계마을, 역촌 등 은계역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정요근, 「조선초기 驛路網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한국평화문제연구소 공편, 『조선향토대백과사전』, 평화문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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