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관시(六百館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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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별시 중 초시에서 600명을 선발한 시험.

개설

문과별시 중 초시에서 600명을 선발하는 시험을 육백별시 또는 육백관시라 하였다.

내용 및 특징

문과별시초시의 선발 인원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300명을 선발하는 시험을 삼백별시, 600명을 선발하는 시험을 육백별시라 하였다. 육백별시의 시험장은 서울에만 설치되는 경우와 서울과 지방에 나누어 설치되는 경우가 있었다.

별시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특별히 시행하는 시험이었다. 육백관시도 왕세자 책봉이나 부묘(『인조실록』 13년 2월 4일), 선왕을 태묘(太廟)에 합사(合祀)하고 대왕대비와 왕대비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중궁전에게 책례(冊禮)를 올리는 경사 등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현종실록』 2년 6월 1일).

시험은 초장과 종장 2단계로 구분되었다. 초장에서는 부(賦)·표(表) 가운데 하나를 보고, 종장에서는 책문(策文)을 보게 하였다. 초시를 마치고 강경시험을 실시할 때도 있었고 제외할 때도 있었다. 1666년(현종 7)에 시행된 육백관시에서는 강경을 제외하였다(『현종실록』 7년 5월 17일). 1672년에 실시한 육백관시에서도 강경을 제외시켰다(『현종개수실록』 13년 5월 14일).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