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제조(儒學提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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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태종대 문반 참하관원의 유학 교육을 위해서 마련한 관직.

개설

유학제조는 조선시대 태종대에만 설치된 관직으로서, 십학(十學) 중의 하나인 유학에 두어진 제조를 말하였다. 당시 유학제조로 임명된 사람은 예문관(藝文館) 대학사(大學士)를 역임한 권근(權近)이었다. 유학제조의 역할은 문과에 급제한 뒤 관원의 삶을 시작한 성균관(成均館)·교서관(校書館)·예문관(藝文館)의 7품 이하 참하관(參下官)을 대상으로 유학을 지속적으로 공부시키는 것이었다.

내용과 특징

1406년(태종 6)에 좌정승하륜(河崙)이 건의하여 십학(十學), 즉 유학(儒學)·무학(武學)·이학(吏學)·역학(譯學)·음양풍수학(陰陽風水學)·의학(醫學)·자학(字學)·율학(律學)·산학(算學)·악학(樂學)을 설치하고 각각 제조관(提調官)을 두었다(『태종실록』 6년 11월 15일). 유학제조는 바로 이 십학 중 하나인 유학에 설치된 제조를 가리켰다.

본래 제조는 중국의 송·원에서 특정의 사무를 주관하는 관직으로 사용되다가 고려후기에 원으로부터 수용되어 주로 정직(正職)이 아닌 명예직 혹은 대리직과 임시직 등 첨설직(添設職)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제조는 겸직으로 이용되었는데, 이후 크게 숫자가 늘어나면서 제조 외에 도제조(都提調)·부제조(副提調)도 생겨났다. 1406년(태종 6)에 유학을 비롯해 십학을 설치한 목적은 하위직 문반, 무반, 기술 관원의 재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이때 유학제조로 임명된 사람은 예문관(藝文館) 대학사(大學士)를 역임한 권근이었다.

그런데 당시 유학제조권근의 역할은 단순히 성균관·교서관·예문관의 7품 이하 참하관을 대상으로 유학을 공부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으며, 이 세 관서의 참하관원에게 경서를 강독시킨 결과를 고과(考課)에 반영하는 것도 그의 역할에 포함되었다.

이전까지 문과 급제자들은 성균관·교서관·예문관의 참하관원에 배속된 이후 급제한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올라가다가 6품 관직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태종대에 들어서면서 이조와 병조가 인사관리 기구로 확립되어 매년 관원들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여 승진시키는 도목거관(都目去官)을 중심으로 인사관리상의 통제를 강화하고 당상관이 당하관에 대하여 임기와 직무를 기준으로 고과하는 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따라서 인사행정의 원칙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기 위하여 문과 급제 출신이 배속된 관원이라 하더라도 성균관·교서관·예문관의 참하관원에게도 경서 강독 시험과 실제 근무 일수를 요구하고자 하였고, 그 과정에서 유학제조에게도 관원의 교육 이외에 고과 평가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태종실록』 7년 3월 24일).

참고문헌

  • 『임하필기(林下筆記)』
  • 『양촌집(陽村集)』
  • 차미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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