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遊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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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 시기 무관의 품계 중 하나로 유격장군을 줄여 부르는 말.

개설

지방에서 군사적 소요가 발생하면 중앙에서 총병관(總兵官)을 파견하여 한 방면의 군사를 통솔하게 하였다. 명대에는 총병관의 지휘하에 부총병(副總兵), 참장(參將), 유격(遊擊), 수비(守備), 파총(把摠) 등의 관직을 두었는데, 이들의 직임은 점차 상설화되었다.

담당 직무

군사의 조련은 물론 주둔지의 방어와 지원을 담당하였고, 전시에 유병(遊兵)을 통솔하여 군사 작전을 수행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유(史儒), 전세정(錢世禎), 심유경(沈惟敬) 등이 유격의 직임을 가지고 조선에 파견되었다. 이 중 심유경은 병부 상서 석성(石星)이 유격장군(遊擊將軍)이라는 직함을 주어 이여송(李如松)의 휘하로 보냈는데, 그는 임진왜란 기간 중 명과 일본의 강화협상을 주도한 인물로 유명하다(『선조실록』 25년 6월 29일).

변천

한(漢) 무제 시기 유격장군을 두어 군사를 통솔하게 하여 전장에 투입하였는데 그 직권이 상당히 중요했다. 이후 동한에서 당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설치되었으며 당, 송의 무산관(武散官) 중에서도 유격장군이 있었다. 명대에도 예전과 같이 변경과 요지를 지키는 주둔군에 유격장군을 두었는데, 품급과 정원(定員)이 없었으며 참장의 지위 아래에 있었다. 지위 체계는 총병-부총병-참장-부참장-유격-수비-파총이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대부분 공신, 외척이 담당하였으며 주둔지의 방어와 지원을 나누어 맡아 처리하였다. 청 녹영병(綠營兵) 군관에도 유격이 있었으며 종3품으로 참장의 아래 직급이었다.

참고문헌

  • 남의현, 『명대 요동지배정책 연구』, 강원대학교출판부, 2008.
  • 中國歷史大辭典·明史編纂委員會編, 『中國歷史大辭典·明史卷』, 上海辭書出版社, 1995.
  • 沈起煒·徐光烈, 『中國歷代職官辭典』, 上海辭書出版社, 1998.
  • 김경태, 「임진전쟁기 강화교섭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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