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越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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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함경도 지역민이 생계를 위하여 두만강 이북의 만주로 이동하여 농지를 개간하던 것.

개설

청이 건국하고 북경으로 천도한 이후 두만강 이북의 간도 지역은 봉금지대(封禁地帶)가 되어 한인의 거주가 금지되었다. 1712년(숙종 38) 청국과의 회담으로 세워진 백두산정계비는 양국 간의 국경을 확정하여 간도에 대한 양국인의 이동과 거주를 제한하는 계기가 되었다(『숙종실록』 38년 6월 10일). 그러나 양국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농지를 개간하고 동식물을 채취하는 경제활동이 증가하였다. 특히 1869년(고종 6)과 1870년(고종 7)에는 함경도에 큰 흉년이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하여 이주하였다. 이때 조선인들이 두만강이나 압록강의 양국 경계를 넘어 만주에서 경작하는 행위를 월간이라고 하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월간인들을 극형에 처하는 강공책을 쓰면서(『고종실록』 7년 11월 28일) 이들의 쇄환(刷還)을 위해서도 노력하였으나, 개항기 혼란한 상황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을 통제할 행정력이 약화되어 있었고 이미 생활 근거를 잡은 이주민들도 응하지 않았다. 결국 청국이 이들을 강제로 호적에 유입시키는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하여 조선 정부와 국경을 재조정하는 감계회담을 개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20세기 초 대한제국기와 통감부시기를 거치면서 월간의 규모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 이후 재차 많은 수의 조선인이 일제의 압박을 피하고 생계를 찾기 위하여 월간하는 일이 증가하였다.

내용 및 특징

월간이 이루어진 함경도 이북 두만강 주변 지역은 19세기 초까지 청국과 조선 정부의 행정력이 잘 미치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봉금지역(封禁地域) 혹은 일명 간광지대(間曠地帶)로서 거주민이 희박한 곳이었다. 청국이 왕조의 발상지를 신성시하려는 목적으로 한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고, 조선도 청국의 정책에 부합하여 자국민의 이주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반면 거주민이 희박한 탓에 그만큼 인삼과 털가죽 등의 채취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였고, 수백 년간 개간되지 않은 땅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데 유리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경제적 이익과 생계 해결을 목적으로 한 조선인의 월간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19세기 말 청국과 조선 정부는 변경에 대한 위기의식과 국경 인식의 강화에 따라 월간을 통제하게 되었다. 청국에서는 월간 자들을 조선 측에서 조사해 다시 데려갈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한편, 청국인으로 변모시켜 지역경제 개발에 활용하고자 하였다(『고종실록』 19년 11월 25일). 또한 1889년(고종 26) 갑신정변을 진압하고 조선에 주둔한 원세개(袁世凱)가 과거 월간인의 조사를 요구하기도 하여 19세기 말에는 월간이 주춤하는 상황이 되었다(『고종실록』 26년 7월 8일). 그런데 1903년 조선 정부는 월간 실태를 조사하였는데, 이때 간도에 거주한 조선인이 13,000여 호에 이르러 이들을 소환하거나 청국인화하도록 묵인하기에는 너무 많은 인구가 두만강 이북에 정착하고 있었다. 결국 조선 정부는 우선 월간인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시찰관 이범윤을 특별히 파견하여 그곳에 주재하면서 월간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간도 거주 조선인들의 청원사항이기도 하였다(『고종실록』 40년 8월 11일).

변천

1907년(광무 11) 2월 통감부 임시 간도파출소가 설치된 이후 조선인의 월간은 행정적·외교적으로 해결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일본은 월간인들을 이용하여 간도 진출을 획책하고자 월간한 조선인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반면 청국에서는 일제의 획책을 저지하며 월간 조선인들의 청국인화를 주도하였다. 이런 와중에 1910년 청국과 일본 사이의 간도협약이 체결되어 간도가 청국의 영토라는 것이 국제적 협약으로 명시됨으로써 조선인의 월간은 국제법상 불법이 되었으며, 현실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감계사등록(勘界使謄錄)』
  • 『통감부문서(統監府文書)』
  • 『통감부임시간도파출소기요(統監府臨時間島派出所紀要)』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1967.
  • 이왕무·양승률·서동일·정욱재, 『역주 감계사등록』 1, 동북아역사재단, 2008.
  • 이왕무·양승률·서동일·정욱재, 『역주 감계사등록』 2, 동북아역사재단, 2010.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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