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元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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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후한(後漢) 장제(章帝) 대에 사용한 연호(84년~87년: 장제10~장제12).

그 외에

중국 당(唐)나라 헌종(憲宗) 대에 사용한 연호(806년~820년: 헌종2~헌종16).

개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하는 원화(元和) 연호는 크게 2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중국 후한의 제 3대 황제인 장제(章帝)가 사용한 3개의 연호 가운데 2번째 연호를 들 수 있다(84년~87년). 조선(朝鮮)에서는 정치 · 사회 · 문화적 변화 및 자연 재해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예를 참조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화 연호도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중국 당나라의 제 11대 황제로 당나라의 부흥을 이끈 헌종이 사용한 연호가 있다(806년~820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주루 <원화의 난(亂)> 및 유우석(劉禹錫)과 관련된 고사를 인용하는 경우에 등장한다. 헌종은 당나라를 재건하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정치를 펼친 인물이다. 그러나 말년에 금단을 먹고 조급증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두려워한 환관(宦官)진홍지(陳弘志) 등이 그를 살해하였는데, 이를 <원화의 난>이라고 한다.

이어 유우석과 관련된 고사를 살펴보면, 유우석은 헌종이 왕위에 오르기 직전 정치 개혁에 참여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유우석은 좌천이 되었고, 원화10년에서야 다시 재상으로 임명되어 중앙 정부로 소환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지은 시가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그는 다시 좌천되었다. 이때 중앙에서 먼 곳으로 좌천시키고자 하였으나, 유우석에게 여든이 된 노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곳으로 좌천시켰다. 그러므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임금의 선정(善政) 등에 대하여 논할 때에, 원화 연간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조선에서는 정치 · 사회 · 문화적 변화 및 자연 재해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예를 참조하였던 까닭에, 이러한 맥락에서 원화 연호도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후한서(後漢書)』
  • 『구당서(舊唐書)』
  • 『신당서(新唐書)』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