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요준(源了俊)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일본 남북조시대의 무장이자 가인(歌人).

개설

원강(遠江) 지역의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인 수호(守護)를 역임하였으며, 장군(將軍) 족리의전(足利義詮)을 섬겼다. 1371년에 구주탐제(九州探題)가 되어 구주에 있는 남조(南朝)를 제압하였으나, 족리의전을 제거하려고 하였던 무장 족리의만(足利義滿)과의 공모를 의심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

활동 사항

어려서부터 일본 고유 형식의 시가(詩歌)인 화가(和歌)를 배우고 냉천위수(冷泉爲秀)의 문하에 들어가 냉청가학(冷泉歌學)의 담당자가 되었다. 또한 주아(周阿)·이조량기(二條良基) 등으로부터 중세 일본 시가의 한 형태인 연가(連歌)를 배웠다. 1367년(공민 16) 실정막부(室町幕府)에서 소송의 심리 및 기록과 기타 업무를 담당하는 인부두인(引付頭人)이 되었다. 같은 해 말에 장군 족리의전이 사망하자 출가하여 법명을 요준이라고 하였다. 당시 남조(南朝) 쪽의 세력은 쇠퇴하고 있었지만 구주(九州)에서는 회량친왕(懷良親王)과 국지무광(菊池武光)을 중심으로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족리의전의 뒤를 이은 족리의만(足利義滿)의 통일정권은 구주를 제압하지 않고서는 확립할 수 없었다. 원요준이 구주탐제로 발탁되어 1371년 2월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서쪽으로 가는 도중에 중국(中國) 지방의 웅족(雄族)을 복종시켜 군사력을 증강하였다. 이렇게 힘을 결속하여 1372년 8월 대재부(大宰府)를 함락시켰다. 1374년 9월 국지씨(菊池氏)가 회량친왕을 옹립하고 그 본거지를 비후국(肥後國) 국지(菊池)로 철퇴하자마자 원요준은 이를 뒤쫓았지만 소이동자(少貳冬資)를 모살하였기 때문에 도진씨구(島津氏久)가 배반함으로써 남구주(南九州) 경영을 이후의 과제로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비전(肥前)·비후(肥後) 그 외의 지역 경영에 힘썼으며, 1381년 6월 국지씨의 본거지인 외부성(隈部城)과 양성친왕(良成親王)의 본거지인 염토성(染土城)을 함락시켰다. 남구주경영의 최대 장해였던 도진씨구도 곧 사망하면서 원요준의 구주경영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역대 탐제가 실패하였던 구주경영에 원요준이 성공한 것은 구주로 들어가기 전에 중국 지역에 기반을 확고히 하고 구주경영의 중심지였던 대재부를 최초로 장악하였다는 점, 도진씨구가 모반을 하였지만 구주 경영에서 최대 장애였던 소이씨(少貳氏)를 완전봉쇄하여 북구주에서의 경합 세력을 제거하여 탐제권을 확립하였다는 점, 또한 대재부를 장악한 소이시를 제압한 결과 대외교섭의 실질적인 권한을 확립하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원요준은 장군 권력을 중심으로 안정된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원요준의 탐제 재임은 구주를 단위로 하는 분권적인 세력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점이 막부의 꺼리는 바가 되어 1395년(태조 4) 윤7월 경도(京都)로 소환되어 탐제의 직분을 박탈당하였다. 이후 남은 생을 화가(和歌)·연가(連歌)를 지도하고 저작 활동을 하다가 1412년에서 1418년 사이에 사망하였다.

조선과의 관계에서는 1394년(태조 3)에 원요준의 사자가 조선에서 보낸 승려 범명(梵明)과 함께 와서 왜구(倭寇)에게 잡혀갔던 남녀 659명을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있다(『태조실록』 3년 7월 13일).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는 조선 왕이 구주 절도사(九州節度使)원요준의 청구에 따라 집비둘기 세 쌍을 보냈다(『태조실록』 3년 10월 6일).

저술 및 작품

『하초(下草)』, 『이언초(二言抄)』, 『언주집(言麈集)』, 『사설자견집(師説自見集)』, 『요준일자전(了俊一子傳)』, 『요준가학서(了俊歌學書)』, 『가림(歌林)』, 『요준일기(了俊日記)』, 『낙서로현(落書露顯)』, 『명제화가전집(明題和歌全集)』, 『녹원원전엄도예기(鹿苑院殿嚴島詣記)』, 『난태평기(難太平記)』, 『금천요준서찰례(今川了俊書札禮)』

묘소

정강현(靜岡縣) 대정시(袋井市) 해장사(海藏寺).

참고문헌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日本人名大辭典』, 講談社, 2009.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三宅英利 著·손승철 譯, 『근세 한일관계사 연구』, 이론과 실천, 1991.
  • 손승철 編著, 『근세 한일관계사』, 강원대학교 출판부,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