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元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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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후한(後漢) 환제(桓帝) 대에 사용한 연호(151년~152년: 환제6~환제8).

그 외에

중국 남조(南朝) 때 송(宋)나라의 문제(文帝)와 효무제(孝武帝)가 사용한 연호(424년~453년: 문제1~효무제2).

개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하는 원가(元嘉) 연호는 2가지가 있다.

우선 중국 후한의 제 11대 황제인 환제가 사용한 7개의 연호 가운데 3번째 연호가 그것이다(151년~153년). 환제는 원가 연호를 151년부터 153년 5월까지 2년 5개월 동안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환제 대의 원가 연호는 『중종실록(中宗實錄)』중종20년(1525년) 1월 21일자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전염병이 돌자 그 구제 방안을 모의하던 가운데 환제 시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것은 정치 · 사회 · 문화적 변화 및 자연 재해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예를 참조하던 조선(朝鮮)의 관례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중국 남조의 송나라 제 3대 황제인 문제부터 시작하여 제 4대 황제인 효무제2년까지 사용한 연호를 들 수 있다(424년~453년). 문제는 문치주의 정치를 실시한 황제로, 그의 치세 초반 송나라 사회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거듭된 대외 정책의 실패로, 결국 450년 송나라는 북위(北魏)의 침공을 받으면서 급격히 쇠퇴하였다. 이후 문제는 황태자 유소(劉劭)에게 살해당하였으며, 유소 또한 동생 유준(劉駿)에게 살해당하였는데, 유준이 바로 제 4대 황제인 효무제이다. 즉 송나라 원가 연안은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이때의 원간 연안은 크게 3가지 종류이다. 우선 조선의 제도 및 예법을 결정하기 위하여 과거의 예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원가 연간을 살펴본 것이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 고을의 유래 및 변천을 살펴볼 때 연대(年代)를 알려주기 위하여 등장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마지막으로는 송나라 원가 연간의 사회상과 연관하여 등장하고 있는데, 원가 연간의 남송이 처음에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후반에는 여러 혼란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즉 송나라의 이런 상황을 교훈삼아 정치를 잘 행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세조실록(世祖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후한서(後漢書)』
  • 『송사(宋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