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雲峴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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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친아버지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궁가(宮家).

개설

이하응의 개인 저택으로, 고종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명성황후(明成皇后)가 간택된 후 가례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위치 및 용도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雲泥洞)에 있다. 운현궁이 자리하고 있는 운니동은 비만 오면 땅이 질퍽거려 붙여진 지명이다. 그 북쪽에는 구름재 또는 운현(雲峴)으로 불리는 고개가 있었다. 흥선대원군 저택의 이름은 이 지명을 따른 것이다. 운니동은 북쪽에 안국로를 사이에 두고 가회동을 바라보고 있으며, 남으로는 경운동과 익선동, 서쪽으로는 경운동, 동쪽으로는 와룡동과 접해 있다.

변천 및 현황

현재의 운현궁은 1863년(고종 즉위) 12월 고종이 즉위한 후 대왕대비 조씨의 하교로 증축된 건물이다. 운현궁 증축 공사는 1864년(고종 1) 1월에 시작되어 9월에 중심 건물인 노락당(老樂堂)과 대원군의 거처인 노안당(老安堂)을 낙성하였고(『고종실록』 1년 9월 24일), 1869년(고종 6)에 북쪽 별당채인 이로당(二老堂)을 증축하였다. 본래 운현궁에는 창덕궁에 머물던 고종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경근문(敬覲門)과 대원군의 전용 문인 공근문(恭覲門), 대원군 전용 사랑채였던 아재당(我在堂), 손님 접대 장소였던 영화루(迎和樓)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모두 헐리고 없다.

형태

운현궁의 대지는 남북으로 길고 남동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다. 대지의 제일 앞쪽에 대원군의 거처였던 노안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뒤쪽에 행랑채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안채인 노락당은 사랑채 영역 뒤쪽 노안당과 같은 축에 있다. 노락당 뒤쪽으로는 부속 건물과 별당채인 이로당이 있다. 그보다 더 북쪽으로 별당채인 영로당(永老堂)이 있는데, 영로당은 별도로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운현궁의 안채인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된 몸채에 동·서 끝 쪽을 각각 2칸씩 내밀었다. 후면 동쪽 끝도 3칸 북쪽으로 내민 형태이다. 가운데 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전후좌우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온돌방 외에는 모두 마루를 깔았는데 대청과 툇마루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덧달린 툇마루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온돌방의 구분은 대부분 장지문과 분합문으로 하고 있으나, 동측 부엌에 접해 있는 방은 궁궐에서와 같이 나무로 틀을 짜고 그 위에 종이를 발라 구성한 지벽(紙璧)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노안당에도 궁궐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온돌방의 외면에 퇴(退)를 둔 것이다. 이는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예로, 궁궐 전당(殿堂) 온돌의 온열 환경을 유지하고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했던 가퇴(假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노안당의 동쪽 끝 툇마루는 통로로 사용하는 공간인데 남쪽으로는 사랑채인 노안당, 북쪽으로는 노락당의 북행각이 연결되도록 하였다. 부엌 남측에는 서구식으로 지은 양관으로 연결되던 복도각도 일부 남아 있다.

대원군의 거처였던 노안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몸채에 영화루(迎和樓)라는 현판이 달린 누마루가 우측 끝단에 돌출되어 있다. 후면으로는 노락당 쪽으로 온돌방이 뻗어 있다. 서쪽에 대청을 배치하고 동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안채와 마찬가지로 사면에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 마루는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하였고 구석에는 작은 화장실까지 둔 것이 이채롭다. 동쪽 온돌방의 후면 역시 지벽을 만들어 궁궐과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노락당의 후면에는 북행각과 이어진 별당채가 있는데, 이로당이다. 운현궁에서 가장 변형이 심한 이로당은 ‘ㅁ’ 자형의 평면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민가에서는 중심 공간이 마당의 후면에 위치하는데, 이로당은 그와 다르다. 중심 공간이 남쪽에 있고 뒤쪽으로 그 부속 공간들이 마당을 중심으로 둘러서 있다. 역시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동쪽 온돌방의 동벽이 지벽으로 꾸며져 있다.

운현궁에는 다양한 창호가 사용되었다. 대청 외부의 문들은 세살청판분합을, 온돌방의 바깥 툇마루에는 만살청판분합을 달았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불발기를 설치하였다. 행각에는 용자창과 판문을 사용하였다. 온돌방의 창은 쌍창, 영창, 흑창과 갑창으로 구성되는 3중창을 설치하였는데, 영창은 완자창과 유리영창을 번갈아 사용하였다. 사롱창, 귀갑창, 고창 등도 곳곳에 사용되어 건물의 품위를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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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한국건축사협회 편, 『민가건축 1~2』, 보성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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