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룡보(雲龍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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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갑산도호부에 속한 진보.

개설

운룡보는 관방시설로, 주변 진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중요했다. 함경남도의 행영(行營) 후보지로 꼽히기도 했으며, 성종대에 석성을 쌓았다.

변천 및 현황

중종대에 의정부가 함경남도의 행영을 옮기자고 건의하면서 후보지로 운룡보를 거론했다. 운룡보는 각 진의 중앙이어서 구원을 파견할 길이 적당하며, 북쪽에는 높은 고개가 있어 적의 침입을 살필 수 있었다. 또한 동학(洞壑) 안이 광활하여 물이 있고 초지도 있어 민간에서 목축을 하면서 살기에도 적당했다는 것이다(『중종실록』 23년 8월 13일). 하지만 함경도관찰사성세창(成世昌)의 보고에 따르면 운룡보는 각 진의 중앙도 아니며, 근처는 야인(野人)이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지역이라고 했다. 또한 운룡보는 큰 진을 설치하기에는 지형상 문제점이 많았다고 주장했다(『중종실록』 24년 5월 4일).

형태

석성(石城)으로 높이가 7척(약 2.1m)이고 둘레가 1,446척(약 438.2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