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容隱)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친속이 죄를 범한 경우에는 비록 숨겨주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것.

내용

조선시대 사용하던 『大明律』 「형률(刑律)」 포망편(捕亡編)에는 지정장닉죄인조(知情藏匿罪人條)를 두어 범죄자를 숨겨주고 관사(官司)에 신고하지 않은 자를 처벌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명률』의 「명례율(名例律)」에는 친속상위용은조(親屬相爲容隱條)를 두어서 일정한 범위의 친속(親屬) 간에는 서로 숨겨주는 것을 용인하였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 조문을 ‘용은(容隱)’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용은을 허용한 것은 무엇보다 윤리(倫理)와 풍화(風化)를 돈독케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조문에 따르면 동거인(同居人)이나 대공(大功) 이상의 친속 및 외조부모·외손·처부모·사위·손주며느리·남편의 형제·형제의 아내를 은닉한 경우는 논죄하지 않았다. 또, 노비가 가장(家長)을 숨기는 경우도 역시 논죄하지 않았다. 반면에 소공(小功) 이하의 친속은 처벌을 전부 면해주지는 않았지만, 보통의 경우에 비해서는 감경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외가 있어서 모반(謀叛) 이상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용은의 대상이 아니었다.

1409년(태종 9)에는 종매(從妹)의 간통죄를 고발한 자가 용은하지 않고 추악함을 밖으로 드러내었다고 하여 처벌되었다. 1434년(세종 16)에는 동생이 절도(竊盜)한 것을 타인을 시켜서 고발하게 한 남자 종[私奴]을, 형임에도 숨겨주지 않았다고 하여 신문하여 조사토록 했다. 한편 1451년(문종 1)에는 식견이 있는 남편이 되어 절도(竊盜)한 아내를 버리지 않고 도리어 죄를 숨겨주었다고 하여 용은의 법리를 적용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용은이 허용되는 친속간이라고 하더라도 증인이나 참고인 자격으로는 신문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488년(성종 19)에는 노비(奴婢)를 신문하여 주인의 죄상(罪狀)을 고하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성종은 노비가 직접 고하는 것과 국가(國家)에서 신문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반면에 1534년(중종 29)에는 간통한 며느리의 죄를 조사하기 위해 시어머니를 증인으로 신문하는 것은 용은의 법례에 어긋나고 은의(恩義)도 손상하는 것이라는 견해에 따라, 신문을 그만두게 하라는 전교(傳敎)가 내려졌다.

용례

三廳委官領議政尹弼商等來啓曰 凡相爲容隱者 謀叛大逆外 不許告 今杖訊士大夫家奴婢 使告其主所犯 恐傷大體 傳曰 奴婢自告其主所犯則不可矣 國家刑訊而告之 有何不可(『성종실록』 19년 6월 3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