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사(龍宮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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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대에 장길산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 머물렀던 사찰.

개설

용궁사(龍宮寺)의 위치와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1697년(숙종 23)에 있었던 이절(李梲)·유선기(兪選基)의 반역모의(反逆謀議) 사건과 관련하여 용궁사가 언급된 것으로 볼 때 평안도 소재의 사찰로 추정된다. 당시 용궁사 승려 묘정(卯定)은 금강산에 머물고 있던 중국 출신 승려 운부(雲浮)로부터 천문과 지리 등의 술업(術業)을 배웠고, 장길산(張吉山) 무리들과 결탁하였다는 혐의가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용궁사의 위치와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장길산 사건의 연루자였던 이영창(李榮昌) 등이 금강산에서 온 승려 묘정(卯定)을 만나기 위해 간 곳이 용궁사였다. 승려 묘정은 금강산에 머물고 있던 중국 출신 승려 운부(雲浮)로부터 천문과 지리 등의 술업(術業)을 배웠고, 장길산 무리들과 결탁하였다는 혐의가 있었다(『숙종실록』 23년 1월 10일). 이로 보건대 용궁사는 당시 평안남도 양덕(陽德) 일대에서 활약하던 장길산과 결탁한 승려들이 거처하였으므로 평안도에 있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운부의 제자로서 뛰어난 승려로는 옥여(玉如)·일여(一如)·묘정(卯定)·대성(大聖)·법주(法主) 등 100여 인이 있었다고 한다. 운부는 명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에서 표류하여 조선에 도착한 후 출가하여 금강산의 승려가 되었다.

참고문헌

  • 이종수, 「숙종 7년 중국선박의 표착과 백암성총의 불서간행」, 『불교학연구』21,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