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瓦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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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지붕을 씌우는 데 필요한 기와를 제작하는 장인.

개설

조선의 건국 및 한양 천도와 더불어 한양에도 많은 기와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미 동서요(東西窯)를 만들었지만 기와의 공급을 턱없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내내 한양에 필요한 기와는 와서(瓦署)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와서는 한성부 용산 동쪽 둔지방(屯之坊)에 있었다. 이곳은 기와의 재료인 진흙이 풍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용산은 한강을 따라 운반되는 목재가 최종적으로 적재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마에 필요한 목재를 수급하기 용이한 곳이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공전(工典)」 ‘공장’조에 따르면 와서에는 40명의 와장(瓦匠)과 4명의 잡상장(雜像匠)이 소속되어 있었다.

담당 직무

한양의 집들이 모두 초가집이어서 미관상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재의 염려가 있어 따로 별와요(別瓦窯)를 만들어 기와를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태종실록』 6년 1월 28일). 1426년(세종 8)에는 한양에 큰 화재가 발생해 많은 집들이 소실되었다. 이를 재건하기 위해 2월 29일 다시 별요 설치를 논의하였다. 이때 논의된 내용으로 조선시대 와장이 어떻게 작업을 진행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별요에 소속된 와장은 40명이었는데 대부분 승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특징이 있다. 와장 40명의 일을 도와줄 조역인(助役人)의 숫자가 300명이었다. 또 흙을 이기는 소[踏泥牛] 20마리가 동원되었다. 기와를 굽는 데 필요한 나무[燔瓦木]는 경기·강원·황해도의 선군(船軍)으로 하여금 한강 상류에서 벌채해 수참선(水站船)으로 수송하도록 했다. 와장의 숫자에 비해 조역인의 숫자가 월등히 많이 필요한 것은 기와 제작에 필요한 흙을 채취하고 운반하는 것과 더불어 흙에 포함된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에 조역인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후 흙 반죽을 이겨 기와를 만들 흙판을 만들기 위해 인력 외에 소의 힘을 빌리고 있다. 또 기와 가마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기 위해 선군이 동원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와를 제대로 구워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었다. 와서에서 제작한 기와는 공사 현장까지 수레로 옮겨졌고, 현장에서는 적와장(積瓦匠) 혹은 적눌장(積訥匠)이라고 불리는 장인이 기와를 내려 쌓는 일을 담당했다. 기와를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수가 파손되었기 때문에 대규모의 기와 수송이 필요할 때는 미리 도로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와서에서 공사장까지의 기와 운송은 수레로 할 것이 아니라 방민을 동원해 일렬로 늘어서서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여 운반하면 파손도 없고 오히려 빨리 운송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각 지방에서 소용되는 기와는 와장을 따로 불러 소규모의 가마를 만들고 이곳에서 필요한 만큼만 구워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이때에도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땔감과 흙을 운반했으며 흙을 고르고, 이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와장이 만드는 기와는 규격별로 대와(大瓦), 중와(中瓦), 상와(常瓦)가 있다. 이는 건물의 등급별로 기와의 크기를 달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주건축물에 대와를 사용했다고 한다면 행각과 같은 부속 건축물에 상와를 사용한다. 각각의 기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규격의 와통을 사용한다.

기와를 성형하는 데 사용하는 원형의 통을 와통이라 한다. 기와는 와통 외곽으로 흙판을 둘러쳐 원형의 기와 원판을 만들어낸 다음 이것을 쪼개내어 만든다. 수키와[夫瓦]를 만드는 와통의 직경이 암키와[女瓦]를 만드는 와통의 직경에 비해 훨씬 작다. 수키와는 기와 원판을 둘로 쪼개서 만들며, 암키와는 4개로 쪼개서 만든다. 와공은 기와 외에 막새[莫沙] 또는 방초(防草)도 제작했는데, 막새는 고급 건축물에서만 사용하는 특수 기와다.

변천

조선후기 영건(營建)과 관련된 의궤서에 와장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의궤 기록이 도성 내에서 이루어진 공사에 관한 것이었고 이들 공사에 소용된 기와는 모두 와서에서 제작해놓은 것을 구입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영건의궤(營建儀軌)』
  • 문화재청,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문화재청, 2012.
  • 영건의궤연구회, 『영건의궤』, 동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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