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라(瓦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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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이후 몽골을 구성하였던 대표 세력 중 하나로, 현재 몽골국·중국·러시아 연방에 사는 몽골계 소수민족.

개설

와라(瓦刺)는 몽골의 세력 가운데 하나인 오이라트(Oyirad)를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이다. 오이라트는 12세기경에 예니세이 강 상류 유역에서 반수렵·반목축 생활을 하던 부족이었다. 칭기즈칸의 몽골 통일 과정에서 후투가 베키([忽都合別乞], Qutuγ-a beki)를 우두머리로 한 오이라트 부가 칭기즈칸의 반대편에서 항쟁을 하였으나, 1207년에 이 지역에 출정한 칭기즈칸의 장자인 주치(Juči)에게 항복하였다. 그 이후 오이라트는 4,000호로 편성되었는데 후투가 베키의 자손들은 대대로 몽골 황금씨족의 부마가 되어 대원 제국 치하에서 특수한 신분을 이루었다.

원나라 통치자들이 중원에서 밀려 몽골 본토로 돌아간 후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분립항쟁이 격화되었다. 이때 오이라트는 부족연합체 형태를 가졌으며 4개의 투멘([萬戶], tüme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이라트는 대칸의 권력이 쇠퇴해짐을 틈타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에센([也先], Esen) 때는 동서 몽골을 일시적으로 통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에센이 살해된 뒤 오이라트는 더 이상 몽골 대칸의 자리를 다투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 이후로 다얀(Dayan) 칸이 몽골을 통일할 때 오이라트는 그 통치를 받았다.

대략 16세기 초부터 오이라트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에르치스(Erčis, [Irtysh]) 강 상류에 살게 되었다. 이후 17세기에 들어와 초로스(Čoros) 부에 의하여 내부의 통일이 이루어져 준가르(Jegünγar: ‘좌익(左翼)’이란 뜻) 제국이 건국되었다. 준가르 제국은 몽골의 패권을 놓고 청나라와 치열한 투쟁을 하였으나 결국 1758년 청나라 군대에게 멸망당하였다.

내용 및 특징

오이라트라는 명칭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삼림(森林, oi)에 사는 사람([民], arad)’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오이라트는 원래 칭기즈칸 시대에 오이라트 부족을 비롯한 오인 이르겐([森林民], oin irgen: ‘숲에 사는 백성’이라는 의미)에 기원을 두는데 몽골 권력자들이 중원에 수도를 두고 있을 때 몽골 본토에서 점점 힘을 얻기 시작하였고 14세기 말부터 몽골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더욱 강력해졌다. 더욱이 오이라트는 몽골 정통 대칸과 권력을 다툴 정도로 세력이 부상하면서 사실상 몽골은 크게 동몽골과 오이라트 두 세력으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오이라트는 몽골 서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서몽골이라고도 칭하였다. 중국 명나라 때 사료에서는 동몽골은 ‘달단(韃靼)’으로, 오이라트는 ‘와랄(瓦剌)’로 각각 표기되었다.

15세기 초 오이라트의 수장들인 마하무([馬哈木], Mahamu), 타이핑([太平], Taiping, Тайпин], 바투볼드([把禿孛羅], Batubolud)등은 명나라 조정에서 왕호를 수여받았으며 그들 중 마하무가 명나라 지원을 얻어 동몽골과 경쟁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의 아들 토곤([脫歡], Toγon)은 오이라트 연합체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토곤의 아들 에센(Esen) 때에 이르러서 전 몽골을 일시적으로 통치하기도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에센은 만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권을 형성하고 점차 명나라 북쪽 변방을 침입하여, 1449년 명나라 영종 황제를 포로로 잡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뿐만 아니라 몇 년 뒤에 몽골의 대칸을 몰아내고 스스로 대칸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이 사건을 전하는데, “와라의 간사한 오랑캐가 궁벽하고 거친 땅에 치우쳐 있으면서 그 더러운 무리와 더불어 해마다 서로 공격하고 살육한 결과 패망(敗亡)하고 실몰(失沒)하여 남은 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태종실록』 14년 9월 19일).”는 기록이 있다.

에센이 1454년 살해된 뒤 오이라트는 더 이상 몽골 대칸의 자리를 다투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 이후로 다얀 칸이 몽골을 통일할 때 오이라트는 그 통치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오이라트는 중앙권력과 대칸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를 하였으며 그때마다 동몽골 귀족들의 탄압을 받았다. 예를 들어, 다얀 칸의 손자 투메드 만호의 통치자인 알탄([俺答], Altan) 칸 및 할하(Qalq-a)의 아바타이(Abatai) 칸 등 동몽골 귀족들에게 각각 복속당하였다.

16세기 말부터 오이라트 동쪽에 위치한 할하가 강력해지면서 오이라트의 서쪽 진출을 더 가속화시켰다. 16세기 초에 알타이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오이라트는 17세기에 들어와서 서·북·남으로 진출하였다. 1608년부터 오이라트 연합체의 한 구성원인 토르구드 부(部)는 서진하여 1620년대 말 볼가 강변에 정착하였다. 또한 호쇼트 부는 남진하여 쿠케 노르[靑海]를 점령하고 더 나아가 티베트까지 지배하였다. 한편 옛 터에 남아 있던 오이라트 부족 중 초로스(Čoros) 부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1671년에 초로스 부 우두머리 갈단(Galdan)에 의하여 오늘날 중국 신강 전역을 차지한 준가르 제국이 건국되었다. 갈단은 오이라트 내부의 통일을 이룩하는 동시에 이웃나라에 대한 정복 원정도 강행하였다. 그는 1680년대에 오늘날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 지역을 정복하여 그 지역 여러 왕국들을 속국으로 만들었고 더 나아가 동쪽 이웃인 할하의 내정에도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갈단은 할하몽골의 패권을 놓고 청나라와 치열한 투쟁을 하였으나 실패로 끝나 1696년 할하가 청나라 지배를 받게 되었다. 갈단의 조카이자 계승자인 체웽랍단(Čevengrabdan, 재위 1697~1727년), 그리고 그 아들인 갈단체렝(Galdančering, 재위 1727~1745년) 때 준가르 제국은 세력을 더 확대시켰으며 청나라에 복속당하였던 다른 몽골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계속해서 청나라와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갈단체렝이 사망한 뒤 벌어진 내란으로 인하여 크게 쇠약해져 결국 1755년 청나라 군대에게 점령당하였다. 아무르사나(Amursanaγ-a)를 비롯한 오이라트 귀족 대부분은 청나라에 반기를 들었지만 차례로 진압되어 준가르 제국이 멸망하였다.

오이라트 인민들은 대량 살육을 당하였고, 살아남은 유민들 중 극소수는 그들의 본거지인 일리(伊犁, Ili)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대다수는 몽골의 홉드 등지에 살게 되었다. 또한 일부는 내몽골 땅에 강제 이주당하였다.

조직 및 역할

오이라트는 부족연합체 형태를 가졌으며 15세기 때는 네 개의 투멘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두르벤 오이라트(Dörben oyirad: 네 개의 오이라트)’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시기 투멘이란 개념은 단순히 만호가 아니라 ‘왕국’을 뜻하였기 때문에 오이라트는 네 개의 왕국 연합체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이라트를 구성하였던 부족들은 시기에 따라서 달랐다. 일부 학자들은 오이라트 연합체는 총 3차례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전기(前期) 오이라트 연합체(1437년 형성): ①초로스(Čoros), 토르구드(Torγud), 호쇼드(Qošud)가 합쳐져 하나의 오이라트[부족] ②바르가(Barγu)와 부리야드(Buriyad) ③호이드(Qoyid), 바가투드(Baγatud), 투메드(Tümed) ④우르 몽골(ür mongγol).

중기(中期) 오이라트 연합체(1502년 형성): ①초로스 ②두르베드 ③토르구드 ④호쇼드

후기(後期) 오이라트 연합체(1636년 형성): ①초로스 ②두르베드 ③호쇼드 ④호이드

17~18세기 전반에 초로스는 현재 중국 신강성 이리(Ili), 보르탈라(Borutal-a), 에리엔 하비르가(Eriyen qabirγ-a) 지역에서, 호이드는 타르바가타이(Tarbaγatai)에서, 두르베드는 에르치스 강 유역에서, 호쇼드는 우루무치 (Örümči) 부근에서 각각 거주하였다.

17세기에 들어와서 오이라트인들은 민족 대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1608년부터 오이라트 연합체의 한 구성원인 토르구드 부는 서진하여 1620년대 말 볼가 강변에 정착하였다. 그 후손들은 오늘날 러시아에서 칼미크라는 자치공화국을 세워 살고 있다. 또한 호쇼트 부는 남진하여 후흐노르[청해(靑海)]를 점령하고 티베트까지 지배하였다.

한편 옛 터에 남아 있던 오이라트인들은 준가르 제국을 건국하였는데 이 제국이 청나라에게 멸망당한 후 1771년 볼가 강 유역에 살았던 오이라트(대부분은 토르구드)인들은 오이라트의 본토인 오늘날 신강 지역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 신강 북부에 살고 있다.

변천

만주청나라는 오이라트 준가르 제국을 멸망시킨 후에 1750년대 말 오이라트 유민 대부분을 할하의 서부에 이주시켜 두르베드(Dörbed)의 2개의 출간(ciγulγan) 및 홉드(Qobdu) 지방을 새로 설치하였다. 출간은 맹(盟)으로 해석되는 몽골의 행정단위로, 여러 개의 부족연합을 지칭하였다. 또한 오이라트인으로 구성된 3개의 호쇼를 만들어 할하의 출간들에 귀속시켰다.

1911년 12월 29일 몽골은 독립을 선포하여 독립국가를 세웠다. 이때부터 두르베드의 2개의 출간 및 홉드 지방의 오이라트인들은 몽골국 국민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외에도 러시아 연방칼미크 자치공화국과 산지알타이 자방, 그리고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 및 청해성 등지에 오이라트인들이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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