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五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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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세를 감당하지 못한 자가 도망 등으로 부세 부담을 회피하였을 때, 그 부세를 다른 사람에게 거두는 것을 총칭하는 것으로, 인징(隣徵)·족징(族徵)·초징(哨徵)·부징(富徵)·계징(契徵)을 이르는 말.

내용

부세를 감당하지 못한 자가 도망 등의 방법으로 부담을 회피하면, 지역의 부세 담당자들은 그와 관련된 자들에게 이를 전가시켰는데, 그 관련자들에 따라 각각 명칭이 달랐다.

인징은 그 이웃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이었고, 족징은 그 친인척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2가지 방식은 지역과 시기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행하여졌다.

초징·부징·계징은 현존하는 자료에서는 그 용례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인징과 족징처럼 그 부담을 전가시키는 대상에 따라 부른 명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哨)는 조선후기에 통용되었던 100여 명 내외의 군 편성 단위였다. 따라서 초징은 같은 초에 속한 다른 군역자에게 해당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을 이른 용어로 보인다. 특히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초징이란 용어가 쓰인 지역이 북관 지역이고, 해당 지역이 군사적 요충 지역이었음을 감안하면 초가 단순히 부대 편성 단위가 아니라 부세 운영에서도 중요한 단위로 기능하였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인다.

부징은 군현 내 부유한 호에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19세기에는 지방에 대한 국가의 부세 압력이 커짐에 따라 소위 요호부민(饒戶富民)들이 경제적 침탈을 받는 경우가 상당하였는데, 부징도 그러한 일환으로 생각된다.

계징은 계(契)에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계는 조선후기 군현 내에서 부세 부담과 관련되어 조직된 것으로 주로 관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것이었다. 19세기에 이르면 점차 일반화되었다.

오징은 모두 부세 운영상에서 언급되는 폐단들이었는데, 실록에서 그 용례를 확인해 보면, 환곡 운영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용례

其流亡貧殘之無處指徵者 乃有五徵之名 曰隣徵 族徵 哨徵 富徵 契徵 以充之 新舊莫卞 循環無端 雖一石當納 添作十石 民亦不能自辨 (『순조실록』 20년 7월 23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문용식, 『조선후기 진정과 환곡운영』, 경인문화사, 2001.
  • 송찬섭, 『조선후기 환곡제개혁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 양진석, 「18·19세기 환곡에 관현 연구」, 『한국사론』 21,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