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유(吳兆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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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말기 회군(淮軍)을 지휘한 장수.

개설

오조유는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오장경(吳長慶)·정여창(丁汝昌) 등과 함께 조선에 파견되어 군란을 진압하고 주둔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는 원세개(袁世凱)와 함께 정변을 진압하였다. 1893년 조선 정부는 오조유를 정무사(靖武祠)에 배향자로 추가하여 그의 공적을 기렸다.

활동 사항

오조유는 청년 시기 오장경(吳長慶)이 이끌던 회군 경자영(慶字營)에 소속되어 태평천국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882년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청 정부는 오장경·정여창·오조유 등을 조선에 파견해 난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오조유는 군란이 평정된 이후에도 청군의 지휘관으로 조선에 주재하였다. 1884년 청 정부는 베트남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무력 충돌하게 되자 북양아문의 군대를 재배치하였다. 그리하여 1884년 4월 오장경이 이끌던 친경군의 3영이 조선에서 차출되어 요동으로 배치되고, 오조유는 조선에 남아 나머지 좌영(左營)·후영(後營)·부영(副營) 등 3영을 통솔하였다. 같은 해 12월 갑신정변이 발생하자 오조유는 원세개와 함께 청 정부에 정변 발생을 보고하고 진압에 나섰다(『고종실록』 21년 10월 19일). 오조유는 갑신정변 이후에도 조선에 주둔하였으며, 1886년(광서12) 친경군 3영을 이끌고 요동으로 건너가 여순에 머물렀다. 오조유의 이후 행적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조선 정부는 오장경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무사에 1893년 오조유를 또 한 명의 배향자로 추가하여 그의 조선에서의 공적을 기리도록 하였다(『고종실록』 29년 10월 25일).

상훈 및 추모

정무사(靖武祠)

참고문헌

  • 권혁수, 『19세기 말 한중관계사연구』, 백산자료원, 2000.
  • 박현규, 「서울 오무장공사의 역사와 현황 고찰」, 『중국사연구』 7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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