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배(五呈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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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가 한 세트를 이루는 잔.

개설

오정배(五呈盃)는 조선시대의 연회와 향례에 사용되었던 술잔으로 다섯 개가 한 벌을 이루었다. 주로 금이나 은으로 제작된 귀한 잔으로 왕과 중국 사신이 참석하는 중요한 연회에 사용되었다. 조선후기의 여러 왕실 연회에 오정배가 두루 사용되었으며, 은으로 만든 오정배 외에 유기(鍮器)로 제작된 오정배도 쓰였다.

내용 및 특징

오정배는 다섯 개의 잔이 한 벌을 이루는 잔이다. 다섯 개의 잔이 함께 사용되므로 특별히 오정배를 받치는 용도의 오정배장대(五呈盃長臺)라는 접시 모양의 받침대와 함께 쓰였다. 오정배의 받침대는 모양이 직사각형으로 길어 장대(長臺)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오정배는 오정병(五呈甁)과 함께 사용되었는데, 오정병은 오정배에 따를 술을 담아두는 병이다.

오정배는 중국 사신의 접대와 왕실의 연회에 사용되었다. 주로 은(銀)과 동(銅)으로 제작되었으며, 만들어지는 재질에 따라 은오정배(銀五呈盃)·유오정배(鍮五呈盃) 등으로 불렸다. 왕실 연회에 사용되는 오정배는 중요한 참석자를 위한 그릇이었으며, 연회의 중요도에 따라서 재질이 다른 오정배를 사용하였다. 특히 중국 사신의 접대와 같이 중요한 연회에 쓰이는 오정배는 왕과 중국 사신을 위한 술잔이었으므로 나라의 살림이 좋지 않던 시절에도 반드시 은으로 만들었다(『선조실록』 35년 2월 14일). 은으로 제작된 오정배는 궁궐의 음식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사옹원(司饔院)에서 관리하였으며, 제작은 궁궐에서 사용되는 각종 공예품을 공급하는 상의원(尙衣院)에서 담당했다.

왕이 주관하는 연회에는 주로 은으로 만든 오정배를 사용하였으나, 다른 왕실의 연회에는 유기로 만들어진 오정배를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19세기 이후의 여러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유오정배도 많이 등장하였다.

변천

조선후기에 기록된 여러 『진연의궤』와 『진찬의궤』에는 오정배가 자주 등장한다. 기록에는 그림이 함께 첨부되어 오정배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1829년(순조 29)의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와 1848년(헌종 14)의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에는 유오정배가 쓰였다. 반면에 1887년(고종 24)의 『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 1901년(광무 5)의 『신축진찬의궤(辛丑進饌儀軌)』와 『신축진연의궤(辛丑進宴儀軌)』, 1902년(광무 6)의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에는 은오정배가 사용되었다.

오정배는 왕실의 연회뿐만 아니라 제사에도 사용되었다. 오정배는 다섯 개의 잔을 담는 받침대와 별도의 전용 병[五呈甁]을 갖춘 의례용 그릇으로 정중한 제사 상차림에도 활용되었다. 제사에 사용된 오정배는 제례에 따라 물이나 술을 담는 역할을 했다. 제사에 활용되는 오정배는 상황에 따라 금이나 음으로 만들 수 없을 경우 은으로 도금해서 사용했다(『선조실록』 35년 2월 15일).

참고문헌

  • 정혜승, 「조선후기 궁중연향도와 의궤에 나타난 기명류 분석에 관한 연구」, 『식공간연구』 7, 한국식공간학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