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번(例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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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규칙적으로 백자를 구워내는 것.

개설

예번(例燔)은 사옹원(司饔院)의 관요(官窯)에서 해마다 규칙적으로 백자를 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관요는 매년 백자를 생산하여 한양에 납부해야 했으므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백자를 생산하였다. 예번은 관례대로 백자를 굽는다는 의미의 용어이며, 통상적으로 매년 만들어진 관요 백자를 가리킨다.

내용 및 특징

조선 정부는 1467년(세조 13) 이후 이루어진 사옹원의 확대, 개편을 통해 경기도 광주의 자기소(磁器所)를 관요로 운영하였다. 사옹원은 매년 일정량의 백자를 제작하여 궁궐과 각 관서의 수요를 충당했다. 관요에서는 필요한 수량의 백자를 매년 생산했으므로 그릇의 크기와 종류 등을 일정한 규범으로 정해두었다.

예번은 매년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관요 백자의 생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통상적이고 정기적으로 생산된 관요 백자는 사옹원의 일반적인 쓰임에 활용되었다. 사옹원은 궁궐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식사를 담당했는데 관요 백자는 사용 중에 깨지기도 했고, 간혹 분실되기도 하였으며, 다른 관서에서 필요할 때 주기도 했다. 또한 왕이 신하와 왕족에게 하사하는 선온(宣醞)과 선반(宣飯)을 담아 궁궐 밖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그 밖에 누군가가 관요 백자를 훔쳐 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관요 백자의 숫자가 줄어들었으므로 필요한 양을 보충하기 위해 관요 백자를 매년 일정량 만들었던 것이다.

매년 만들어진 관요 백자의 수량은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조선후기인 17세기 말에는 연간 1,300죽(竹), 약 13,000개의 백자가 궁궐로 보내졌다. 이 수량은 19세기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1866년(고종 3)에 편찬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는 당시 관요에서 13,720개의 백자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성문화된 수량이므로 실제 제작된 백자의 수량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국가의 필요량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예번은 이처럼 일정한 수량과 쓰임을 위해 관요 백자를 제작하는 것을 지칭하였다. 이에 비해 나라에 급한 쓰임이 있어 기존의 수량 이외에 백자를 별도로 제작하는 것은 별번(別燔)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별(別)’ 자는 백자 제작 외에도 별진상(別進上), 별분향(別焚香) 등에 사용되어 특별히 이루어진 행위를 의미한다. 또한 연례(年例)와 다른 별례(別例)로 발생한 행위나 결과물을 두루 의미한다.

변천

조선시대에 관요에서 만들어진 백자에는 한 점씩 갑발(匣鉢)에 넣어 정성껏 구워낸 그릇이 있고, 여러 점을 포개어 제작한 그릇도 있다. 또한 갑발에는 넣지 않았지만 한 점씩 따로 구워낸 백자도 만들어졌다. 가마에서 여러 점을 겹쳐 구운 백자는 그릇의 안쪽과 굽의 접지면에 다른 그릇과 겹쳐지면서 생긴 흔적이 남아 깔끔하지 못했다. 반면에 한 점씩 구운 그릇은 별다른 흠집이 없으므로 여러 점을 포개어 만든 그릇에 비해 품질이 우수했다. 갑발에 넣지 않고 한 점씩 제작된 백자도 포개구이로 제작된 백자에 비해서는 품질이 좋았다.

예번은 일정한 수량으로 매년 제작한다는 의미로서, 그릇을 한 점씩 굽는지, 혹은 포개어 굽는지 아니면 갑발에 넣어 굽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제작 방식을 규정한 용어는 아니다. 조선전기에 운영된 관요 가마터에는 많은 수의 갑발편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조선전기에 연례로 제작된 백자 중에는 갑번(匣燔)으로 제작된 것과 포개어 구운 그릇이 모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의 기록에는 일반적으로 구워 만든 그릇인 예번지기(例燔之器)와, 정교하고 기묘하게 만든 갑번 백자를 구분하였다(『정조실록』 17년 11월 27일). 갑번은 품질이 좋은 백자를 얻기 위하여 그릇을 한 점씩 갑발이라는 통에 넣어 굽는 방법으로 예번에 비해 많은 비용이 들었으므로 사치품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당시 조선 정부의 관리들은 예번으로 제작된 백자와 기교를 부려 기묘하게 제작한 백자도 달리 인식했다(『정조실록』 19년 8월 6일). 그러므로 적어도 조선후기에 예번으로 제작된 백자는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은 일반적인 백자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육전조례(六典條例)』
  • 김영원, 『조선시대 도자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 방병선, 『조선후기 백자 연구』, 일지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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