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현(永柔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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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영유현 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영유현(永柔縣)은 1423년(세종 5)에 설립되어 정5품의 현령이 고을을 다스렸으며, 조선후기까지 유지되다가 1895년(고종 32)에 평양부 영유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영유현은 1396년(태조 5)에 영원진(寧遠鎭)과 유원진(柔遠鎭)을 합쳐 설치한 영녕현(永寧縣)이 종묘의 영녕전(永寧殿)과 이름이 같아, 1423년에 이를 피하기 위해 영유현으로 고을 이름을 바꾸면서 설립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정수(定水), 영녕(永寧), 청계(淸溪), 영청(永淸)이라고도 불렀다.

조직 및 역할

영유현은 고려시대에 처음 설치할 때 종5품의 현령을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령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으나 이후에 훈도를 폐지하였다. 종5품의 현령은 지방행정 관서인 현의 책임자로 수령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종9품의 훈도는 교관으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영유현령은 평안도관찰사의 관할하에 있는 동반 외관직으로 안주진관(安州鎭管)에 소속되었다. 조선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소속 관원으로는 좌수 1명, 별감 2명, 중군 2명, 별장 1명, 천총(千摠) 1명, 파총(把摠) 1명, 초관 5명, 기고관(旗鼓官) 2명, 교련관 2명, 아전 40명, 통인(通引) 29명, 사령 27명, 군뢰(軍牢) 13명, 관노 40명, 관비 49명이 있었다.

변천

영유현은 고려시대에 정수현(定水縣)으로 불리다가 영청현(永淸縣)으로 바뀌었고, 용강현(龍岡縣)에 편입되기도 했다. 조선이 건국한 후 1396년(태조 5)에 영원진과 유원진을 합쳐서 영녕현(永寧縣)이라 부르고 현령을 두었다. 1422년(세종 4)에 수도인 한성부에 종묘 별전을 영녕전이라 이름 지으면서 같은 이름을 피하기 위해 영원진과 유원진의 한 글자씩을 따서 영유현이라 하였다(『세종실록』 4년 9월 25일). 조선후기까지 유지되다가 18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평양부 영유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이존희, 「조선초기의 수령제도」, 『역사학보』30·31 합집,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