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역(寧安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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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회령 읍성 안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영안역(寧安驛)은 회령도호부 성 안에 위치해 있었다. 고려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 신설된 역(驛)이었다. 영안역은 수성도(輸城道)의 소속 역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영안역이 위치했던 회령 지역은 천리장성 외부에 있어 고려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던 곳이었다. 동북 6진(鎭)의 한 곳으로 조선의 건국 이후에 조선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영안역이 회령에 위치한 4곳의 참(站) 중 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회령도호부), 영안역의 설치 시기는 회령도호부가 설치되는 1434년(세종 16) 전후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역들은 남쪽의 안변 지역으로부터 북쪽의 두만강 연안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길게 편성된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 운영되었다. 이 역들에 대한 역도(驛道) 편성은 몇 차례의 변동을 거친 후에 고산도(高山道), 거산도(居山道), 수성도(輸城道) 등 3개의 역도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함경도의 역들이 모두 이 3개의 역도로 편제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영안역은 어느 역도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다만 회령에 위치한 4곳의 참(站) 중 한 곳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당시에 회령 지역이 조선의 영토로 확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안역이 아직 정식의 역으로 간주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6진 지역에 대한 영유권이 확고해진 후 몇 차례의 역도 개편을 통해 『경국대전』에 영안역은 수성도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었다. 『대전회통』에도 변함없이 영안역은 수성도에 소속되었다. 대체로 수성도는 경성 이북 두만강 이남에 위치한 역들로 편성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영안역에는 상등마(上等馬) 2마리, 중등마(中等馬) 3마리, 하등마(下等馬) 6마리, 역리(驛吏) 201명, 역노(驛奴) 70명, 역비(驛婢) 52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영안역은 남쪽으로는 부령·경성 방면, 북쪽으로는 종성·온성 방면, 동쪽으로 경흥 방면과 연결되는 한양~경흥간 간선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영안역에서는 남쪽으로 회령 풍산역(豐山驛), 북쪽으로 종성 종경역(鍾慶驛), 동쪽으로 종성 무안역(撫安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영안역도 폐지되었다.

영안역의 위치는 현재 북한의 행정 구역으로 함경북도 회령시의 남문동·동명동·산업동 일원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호구총수(戶口總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정요근, 「조선초기 驛路網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한국평화문제연구소 공편, 『조선향토대백과사전』, 평화문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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