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궁(寧壽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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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후궁들이 태종 사후에 거처하던 궁가(宮家).

개설

처음에는 의빈궁(懿嬪宮)으로 불리다 세조 연간에 자수궁(慈壽宮)수성궁(壽成宮)의 예(例)에 의거하여 영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 및 용도

영수궁은 한양 내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영수궁에는 태종 승하 후 태종의 후궁들이 살았다.

변천 및 현황

태종에게는 효빈김씨(孝嬪金氏), 명빈김씨(明嬪金氏), 신빈신씨(信嬪辛氏), 선빈안씨(善嬪安氏), 의빈권씨(懿嬪權氏), 소빈노씨(昭嬪盧氏), 숙의최씨(淑儀崔氏), 덕숙옹주 이씨(德淑翁主 李氏), 숙공궁주(淑恭宮主) 김씨(金氏), 의정궁주(義貞宮主) 조씨(趙氏), 혜순궁주(惠順宮主) 이씨(李氏), 순혜옹주(順惠翁主) 장씨(張氏), 혜선옹주(惠善翁主) 홍씨(洪氏), 신순궁주(愼順宮主) 이씨(李氏), 서경옹주(西京翁主) 김영(金英), 궁인(宮人) 고씨(高氏) 등의 후궁이 있었다. 후궁들의 생몰년은 알 수 없어서 태종이 승하할 때까지 몇 명의 후궁이 남아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처소는 의빈궁이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별감(別監)·소친시(小親侍) 8인을 두어 관리하고 시중들게 하였다(『세조실록』 1년 11월 13일). 1457년(세조 3) 5월 22일 예조(禮曹)에서는 의빈궁이란 칭호를 없애고, 자수궁과 수성궁 사례대로 영수궁이라 고치자는 청을 하였다. 세조가 이를 윤허하여 이때부터 의빈궁은 영수궁이 되었다(『세조실록』 3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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