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현(永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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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영동현(永同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청주목에 속한 현이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처음 설립되었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상주(尙州)의 관할이었다가 조선이 건국한 뒤 충청도로 옮겨 왔다. 15세기에 호수가 227호, 인구가 951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45명, 선군(船軍) 85명, 수호군(守護軍) 13명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영동군으로 승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영동현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길동군(吉同郡)이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5)에 영동군(永同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고려 995년(고려 성종 14)에 계주자사(稽州刺史)로 승격되었다. 1005년(고려 목종 8)에 자사를 폐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상주의 임내로 두었으며, 경상도 상주 관할로 하였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뒤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옮겨 오고, 1413년(태종 13)에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조선후기에는 주로 음서 출신을 임명하다가 간혹 문관을 수령으로 임명하는 지역이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18세기 통계에 의하면 관아에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23명, 아전 21명, 지인 12명, 사령 12명, 관노 37명, 관비 32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조선후기에도 영동현은 변화가 없었다. 조선후기에 영동현은 7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원호(元戶) 2,371호, 인구 9,736명으로, 남자 3,915명, 여자 5,821명이었다. 1895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국을 23부(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공주부 영동군으로 승격되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충청북도 영동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