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미(煙戶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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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연호(煙戶)마다 거두던 미곡.

내용

연호미(煙戶米)는 본래 진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려 충선왕이 거둔 것으로, 연호마다 미곡을 거두어 재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충선왕은 진휼 기관으로 유비창(有備倉)을 설치하고 가호(家戶)에서 쌀을 거두어 재원으로 삼았다. 그러나 충선왕의 진휼책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진휼 기관으로 설치한 유비창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왕실의 사적 재정기관으로 변모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가호에서 진휼곡을 징수하려는 시도는 조선초기까지도 계속되었다. 즉 1406년(태종 6) 9월 둔전연호미법(屯田煙戶米法)을 제정하면서 둔전과는 별도로 연호미를 거두어 흉년의 진대(賑貸)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연호미법은 백성들의 반발로 곧 폐지되었다.

용례

立屯田烟戶米法 初 上求言 令議政府採擇施行 願復前朝屯田 烟戶米法 以屯田所出 給船軍食 以煙戶米 備凶年賑貸者數人 政府以其言爲便 請行之(『태종실록』 6년 7월 20일)

참고문헌

  • 李景植, 「朝鮮初期 屯田의 設置와 經營」, 『朝鮮前期土地制度硏究Ⅱ』, 지식산업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