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풍현(延豊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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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연풍현(延豊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충주목에 속한 현이다. 조선 개창 후인 1395년(태조 3)에 장연현(長延縣)과 장풍현(長豊縣)을 병합해서 장풍현이라고 하였으며, 1403년(태종 3)에 연풍현으로 고쳤다. 15세기에 호수는 143호, 인구는 314명이었다. 토지는 1,011결인데, 이 가운데 논은 1/9에 불과하였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20명, 선군(船軍) 13명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연풍군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순종 7)에 괴산군에 병합되어 괴산군 연풍면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연풍군은 고려초기인 1018년(고려 현종 9)에 장연현과 장풍현을 충주의 속현으로 삼았다. 조선 1395년(태조 3)에 두 현을 하나로 합쳐 감무를 파견하고, 이름을 장풍현이라고 하였다. 1403년(태종 3)에 이름을 연풍현으로 고쳤고,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을 파견하는 지역으로 하였다. 문경과 충주·괴산 사이에 위치한 작은 현으로, 1429년(세종 11)에 연풍현 사람들이 겨우 180호에 토지는 450결에 불과한 데다 지역의 경계가 개의 어금니처럼 들쑥날쑥한 견아상입처(犬牙入像處)가 많아 경계도 불규칙하다고 상소하였다. 이에 정부가 경계를 조정하고, 괴산 동면의 각호·각연·안부역 등을 떼어 연풍에 붙여 주었다(『세종실록』 11년 1월 16일). 또 1478년(성종 9)에 충주의 수회촌을 떼어 주었다. 연풍에는 땅속에서 더운 물이 솟아나오는 온정(溫井)이 있어서 온정원을 설치하였다.

연풍현은 산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분지로 인구도 적고, 토지도 적어 군현으로 자립하기 힘든 곳이었다. 이곳을 현으로 삼은 이유는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가는 조령길로 이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현이지만 조선의 사신과 사절로 온 왜인들의 왕래가 빈번해서 주민들이 이들의 접대비와 요역을 조달하느라 고생하였다. 이 교통로를 유지하고 사객을 접대하는 것이 연풍현의 중요한 임무였다. 조령에서 연풍으로 통하는 길은 좁은 샛길이어서 소백산맥을 통과하는 요로 중의 하나로서 임진왜란 때는 조령 방어에 기여하였다(『선조실록』 27년 2월 19일).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작은 현이어서 조선후기에는 음서 출신자를 수령으로 파견하는 지역으로 고정되었다. 좌수 1명, 별감 2명, 수창감관(水倉監官) 1명, 아전 15명, 지인 9명, 사령 12명, 관노 19명, 관비 18명이 있었다. 조령참에는 군사 84명을 두었다.

변천

조선시대 내내 현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18세기에는 4개 면이었으며, 가호는 1,268호, 인구는 남자 1,987명, 여자 2,719명이었다. 토지는 밭 1,074결, 논 223결로 전기에 비해 조금 증가하였다. 1895년에 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괴산군에 합쳐서 연풍면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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