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성자도(沿邊城子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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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양성지가 국경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에 세운 성과 보루를 중심으로 그린 군사지도.

개설

조선시대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지도가 여럿 제작되었다. 군사적 요충지에 축조된 산성을 그린 그림이 대표적인데, 견고하기로 유명한 평안도 영변의 「철옹성전도」, 수도 방어를 담당했던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등의 지도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해안 방어를 위한 군사지도에는 해안의 수군 기지와 해상 교통로 등이 자세히 그려졌으며, 접경 지대를 그린 지도에는 그 지역에 위치한 성곽과 보루 등이 상세하게 그려졌다.

1482년(성종 13) 양성지가 「양계연변방수도(兩界沿邊防戍圖)」·「제주삼읍도(濟州三邑圖)」와 함께 「연변성자도(沿邊城子圖)」를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이들 지도는 모두 대외 방비에 요긴한 군사지도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초기에는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에 4군과 6진이 개척되면서 이 지역의 군사지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조선시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토를 수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지형지세를 파악하고 적절한 장소에 군사시설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도가 필수적으로 이용되었다.

1414년(태종 14) 평안도(平安道)·영길도(永吉道: 현 함경도)에 명하여 성자(城子)를 수축하게 하였다. 평안도 곽산성(郭山城)·능화성(能化城)·옛 수주(隨州)의 청산성(靑山城)을 먼저 수축하고 영길도 함주성(咸州城)은 그 지역의 인력을 이용하여 성을 쌓고 그들이 들어와 살도록 하였다(『태종실록』 14년 8월 15일).

1430년(세종 12)에는 성보를 쌓을 때 적의 정세를 살피는 망루인 적대(敵臺)를 아울러 쌓기 위해 중국의 『당서』와 『책부원귀』 등을 상고하였다. 그리하여 각처의 성을 구축할 때 성면(城面)이 굴곡이 진 부분은 제외하고 평평하고 곧은 부분에는 그 지형을 따라 1백 보마다 1개의 대(臺)를 쌓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2년 9월 24일).

1436년(세종 18) 두만강과 압록강 일대의 요해처에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구자(口子)를 설치하여 변방 방비책을 세우면서 강가에 10리마다 한 성자나 목책(木柵), 혹은 석보(石堡)를 설치하고, 그 사이에 5리마다 연대(烟臺)를 높은 곳에 축조하여 보완하였다. 또한 성자에는 각기 병마사(兵馬使) 1명과 기사(騎士) 수백 명을 두고, 연대에는 각기 척후병 4~5명을 두어 갑작스런 변고에 대비하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8년 윤6월 19일).

세종대에 양성지가 만들어서 진상했던 「연변성자도」도 이러한 변경의 관방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성종실록』 13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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