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현(燕岐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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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세종시 연기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연기현(燕岐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청주목에 속한 현이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설립되었다. 15세기에 호수가 348호, 인구가 1,446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8명, 진군(鎭軍) 10명, 선군(船軍) 156명이었다. 토지는 2,916결인데, 이 가운데 논이 2/5에 좀 모자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연기군으로 승격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연기현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豆仍只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연기로 이름을 고쳐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원인 연산군(燕山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청주(淸州)의 임내로 두었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그 뒤에 목천감무(木川監務)가 연기현을 겸임하게 하였다. 조선이 건국하고 1406년(태종 6)에 연기와 목천 두 현을 나누어서 각기 감무를 두었다. 1414년(태종 14)에 전의현(全義縣)과 병합하여 전기현(全岐縣)으로 고쳤다. 1416년(태종 15)에 다시 연기현을 설치하고 현감을 두었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조선후기에는 주로 음서 출신을 수령으로 파견하는 지역이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18세기 통계에 의하면 관아에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8명, 아전 20명, 지인 9명, 사령 13명, 관노 24명, 관비 22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1680년(숙종 6)에 현을 폐지하고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지역인 문의현(文義縣)에 흡수시켰다. 1685년(숙종 11)에 다시 현을 설치하였다(『숙종실록』 11년 3월 15일).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7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가호는 편호 2,587호, 남자 4,926명, 여자 5,000명이었다. 토지는 밭 923결 56부, 논 948결 44부 7속이었다.

1895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국을 23부(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공주부 연기군으로 승격하였다.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연기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연기현읍지(燕岐縣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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