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복불식(易服不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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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상을 당한 자식들이 머리를 풀고, 일상적인 복장을 소복(素服)으로 갈아입고 음식을 제한하는 규정.

개설

상례의 절차 중 하나이다. 왕이 승하하면 왕세자와 대군 이하는 모두 관(冠)과 웃옷을 벗고 피발(被髮), 즉 머리를 풀었다. 그리고 소복을 입고 윗옷의 앞섶을 옷의 작은 띠에 찔러 넣고, 신발을 벗고 굵은 베로 만든 버선만 착용하여 경전에 나오는 도선(徒跣)의 규정을 대신하였다. 왕비와 빈 이하, 외명부의 공주 및 부부인(府夫人)들도 모두 관과 웃옷을 벗고 머리를 풀고 소복을 입고, 흰 신과 굵은 베로 만든 버선을 신었다.

내용 및 특징

머리를 푸는 것은 친자 또는 승계한 후손만이 할 수 있는 행위로 가장 큰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에도 친녀(親女)와 친자(親子)의 처, 그리고 궁인만이 머리를 풀었다. 『예기(禮記)』 「문상(問喪)」에서는 부모가 막 돌아가시면 관을 벗고 ‘비녀와 머리싸개만을 남겨 둔’ 괄발(括髮)의 모습을 취하였다. 이러한 괄발의 제도가 피발의 형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이다. 이후 송대에 사마광(司馬光)이 이를 따랐고,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 실려 일반화되었다.

『세종실록』「오례」 흉례 의식에 의하면, 상을 당하면 모든 자식이 3일 동안 먹지 않았다. 애통이 극에 당하여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주위 사람들이 죽을 끊여 먹이면 마지못해 먹었다. 국상(國喪)에서도 왕세자와 대군은 3일 동안 죽으로 식사를 대신하였다. 그리고 졸곡 때까지는 고기반찬이 없는 소식(素食)의 식사를 거행하였다. 상을 당한 지 사흘째 되는 날에 소렴(小斂)을 행하는데, 이에 앞서 왕세자와 대군은 머리에 백건(白巾)을 쓰고 환질로 묶는다. 소렴이 끝나면 백건과 환질을 벗고 마승(麻繩)으로 상투를 틀고 수질(首絰), 요질(腰絰), 교대(絞帶)를 착용하였다. 왕비와 왕세자빈 및 내명부와 외명부 이하도 별실로 가서 머리카락을 거두어 모아 마승으로 북상투[髽]를 틀었다. 북상투는 여인이 상중에 하는 머리 모양으로, 머리를 뒤에서 묶어서 이마 쪽을 둘러서 위로 틀어 올린다. 왕이 승한한 후 5일째에 대렴(大斂)을 거행하고 빈소를 차린다. 그리고 다음 날에 마침내 상복을 입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역 국조상례보편』, 민속원, 2008.
  • 조욱, 「동아시아 전통 상례(喪禮) ‘피발(被髮)’의 기원 고찰」, 『규장각』38,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