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출(於虛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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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량합(兀良哈) 추장으로 명에 의하여 건주위지휘사로 임명된 인물.

개설

어허출은 『청사고(淸史稿)』에는 아합출(阿哈出)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명의 영락제가 아직 연왕(燕王) 시절에 그의 딸과 혼인을 하였다. 영락제가 즉위한 후에는 건주위참정(建州衛參政)을 제수받고, 여진인을 초유하였다. 이만주(李滿住)의 조부이다.

활동 사항

조선 측 기록에 의하면 어허출은 요동 개원(開元)에 거주하는 영락제의 제3황후의 아버지인 김어허출(金於虛出)로(『태종실록』 11년 4월 26일), 또는 어허을주(於虛乙主)로 나타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8년 12월 27일). 명은 그에게 이성선(李誠善)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명의 영락제가 아직 연왕이었을 때, 그의 딸과 혼인을 맺었으며, 즉위한 후에는 건주위참정(建州衛參政)을 제수하고, 그로 하여금 여진인들을 초유(招諭)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1년 4월 26일). 그에게는 아들이 둘이었는데, 석가노(釋加奴)와 맹가불화(猛哥不花)였다.

명은 1403년 11월에 건주위(建州衛)를 설치한 후 그를 건주위군민지휘사사(建州衛軍民指揮使司)의 지휘사로 삼았다. 1405년 1월에는 영락제가 도사(都司)를 보내어 말 30필을 참정(參政)어허출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태종실록』 5년 1월 3일). 같은 해 9월에는 명이 어허출을 이용하여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를 입조시키도 하였다. 입조하지 않으면, 동맹가첩목아가 거느린 사람들을 어허출이 차지하게 하겠다는 위협을 한 때문이었다(『태종실록』 5년 9월 13일).

명에서 건주위를 세우고 어허출을 지휘사로 삼아 여진인을 초유하게 하자, 불만을 가진 조선은 경원(慶原)에서 여진인과의 외교 관계를 끊고 무역도 금지하였다. 그러자 건주인들은 조선의 처사에 불만을 가진 여진인들을 부추겨서 경원을 침입하게 하기도 하였다(『태종실록』 6년 2월 28일).

명은 1406년 3월에 그의 장자 김시가노(金時家奴), 즉 석가노(釋加奴)를 건주위지휘사로 임명하였는데(『태종실록』 6년 3월 6일), 이는 그들을 명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의도였다. 이후 기록에는 어허출이 1408년 2월에 조선에 비단 종류인 단자(段子)·남견(藍絹) 각 1필(匹)을 바쳤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그 또한 명나라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422년 영락제는 타타르를 공격하면서 어허출에게 그가 황친이므로, 황친이 사로잡힌다면 명예에 해가 되니, 압록강 지역의 포주(浦州)로 이주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이와 같은 내용을 조선 왕에게 전하겠다고 하였다. 그 후 1424년에 이주하기도 하였다(『세조실록』 8년 12월 27일).

참고문헌

  • 『청사고(淸史稿)』
  • 김주원, 『조선왕조실록의 여진족 족명과 인명』,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 박정민, 「조선시대 여진인 내조(來朝) 연구」,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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