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공원(御供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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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에 황무지 등의 개간을 위해 설치한 기구.

개설

어공원은 1904년(광무 8) 황무지 개간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이다. 어공원의 설치는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동일한 기능을 하던 수륜원이 1904년 1월 폐지된 상태에서, 러일전쟁 후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에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였다. 일본의 요구를 예상한 대한제국은 사전에 어공원을 설치하여 정부가 주체적으로 개간 활동을 벌이고자 했다. 어공원이 일본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설치되었다는 점은, 불과 3개월 만에 폐지되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불필요한 기구라는 국내 여론이 일어나고, 일본도 요구를 철회하자 어공원은 곧바로 폐지되었고, 개간 업무는 농상공부로 다시 넘어갔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어공원은 1904년 5월 황무지 등의 개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시기는 1904년 2월 시작된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내정 간섭과 이권 개입을 본격화하던 때이다. 대표적인 예가 황무지 개척권 요구인데, 일본외무대신이 공식적으로 대한제국 정부에 공문을 보낸 것이 6월 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1월부터 황무지 개척권을 얻어 내기 위한 공작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궁내부 산하에서 개간 등의 비슷한 업무를 행하던 수륜원은 1904년 1월 황실 측근 기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는 국내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폐지된 상태였다. 일본 측의 요구를 예상했던 고종은 수륜원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게 될 어공원을 5월 말에 신설하였다. 즉, 일본 측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어공원의 설치는 한국 정부가 개간 활동을 주체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조직 및 역할

1904년 5월 19일의 궁내부 관제를 보면 어공원은 국내의 들판과 산림 중에서 묵힌 토지와 황무지를 개간하고 경작하며, 강과 바다에 버려진 댐[堤堰]과 어장을 확장하고 정리하여 황실에 바치는 사무를 전적으로 관할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황무지 개간을 주 업무로 한다는 점에서 1월에 폐지된 수륜원을 계승한 것이다. 칙임관인 어공원 경 1인, 주임관인 서무, 회계과장 1인, 위원 2인, 판임관인 주사 3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어공원 경은 궁내부 대신민병석(閔丙奭)이 겸임하였다. 어공원 경을 궁내부 대신이 겸임한다는 규정은 7월 12일 관제 개정에서 삭제되었고, 종1품 조병호(趙秉鎬)가 어공원 경으로 임명되었다.

변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대응하면서 어공원이 설치되었지만, 국내의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다. 내장원과 어공원을 폐지하고 재정을 탁지부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종실록』 41년 7월 15일). 실제로 어공원은 며칠 후인 7월 30일, 설립 3개월 만에 폐지되었다. 이와 같이 어공원은 장기적인 계획과 치밀한 준비 아래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라 러일전쟁과 일본의 침탈이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짧은 기간 존속한 채 사라졌다. 일본이 한국 정부와 백성들의 반발에 주춤하여 개간권 요구를 일단 포기하자 어공원도 폐지되었고, 개간 허가권은 다시 농상공부로 넘어갔다.

참고문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 윤병석, 「일본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대하여: 1904년 장삼석의의 위임계약기도를 중심으로」, 『역사학보』22, 1964.
  • 이영호, 「일제의 식민지 토지정책과 미간지 문제」, 『역사와 현실』3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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