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양해(兩治兩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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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영조대 탕평을 위해 시비의 대상자인 양쪽을 동시에 처벌하거나 포상하던 정치 운영술.

개설

양치양해는 영조대 탕평책의 일환으로 사용했던 정치 운영술이다. 영조 초부터 시행했으며, 정치적으로 처벌을 하거나 포상을 할 때 시비의 당사자인 양쪽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내용 및 특징

1725년(영조 1) 영조는 을사환국(乙巳換局)을 단행한 뒤 소론에서 노론으로 정치 세력을 교체하였다. 당시 소론 내 핵심 인물이었던 김일경(金一鏡)과 삼수옥(三手獄)의 계기를 제공한 목호룡(睦虎龍)을 참형에 처했다. 이에 함께 노론 계열의 인물로 영조 초 소론 세력의 처벌을 주장하였던 이의연(李義淵)이 장형을 맞다 죽었고, 소론 측 심수현(沈壽賢) 등의 처벌을 주장하였던 방만규(方萬規)도 처형되었다(『영조실록』 1년 1월 17일). 이것이 양치양해의 한 예에 해당된다.

변천

양치양해의 방식은 탕평 추진을 위한 정치 운영술의 하나로 정치적 사건의 판정에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리를 조정하는 데 유효하게 적용되었다.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 혹은 양비론(兩非論)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영조대 전반기 탕평을 주도하였던 조현명(趙顯命)의 논리를 통해서 확인된다.

조현명은 노론 측 김용택(金龍澤)과 이천기(李天紀)의 신원 문제와 관련해서, 김용택 등이 경종 즉위 이전에 이미 추대를 도모한 것은 역(逆)이라고 하였다. 영조에게 반역한 소론 측 김일경이나 박필몽(朴弼夢) 등의 죄와 대비시켜 노론과 소론에서 모두 역이 나왔음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양치양해나 양비론은 영조대 탕평책 운영의 중요한 방법으로 정치에 적용되었다.

참고문헌

  • 정만조, 「귀록 조현명 연구: 그의 탕평론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총』8,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