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兩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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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시와 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는 것. 혹은 단순히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시험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기도 함.

개설

생원진사시는 시험의 절차와 방법은 같으나 시험 과목과 시험 날짜가 달랐다. 별도로 시행되던 생원시와 진사시를 1453년부터 하루걸러 시험을 치르고 같은 날 방방하도록 하였다(『단종실록』 1년 1월 24일). 진사시를 먼저 보고 생원시를 나중에 보았다. 때문에 한 사람이 생원시와 진사시에 동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두 시험에 동시에 합격하는 것을 양시(兩試)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서 한 사람이 생원진사시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한 경우를 비롯하여(『명종실록』 8년 6월 9일), 중시(重試)와 별시(別試) 두 시험을 지칭하거나(『중종실록』 30년 12월 25일), 발영시와 등준시 두 시험을 지칭하는(『연산군일기』 4년 9월 6일) 경우처럼 다른 두 종류의 시험을 언급할 때 양시라 하였다.

생원진사시의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에서는 양시를 구중(俱中)이나 쌍중(雙中)과 같은 뜻으로 생원시와 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사마방목의 권말 부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사마방목 권말 부록에는 시험 일자, 시제, 양시, 경외입격자수 등 시험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양시에 합격한 사람들에 관한 정보로 1469년(예종 1) 증광시 사마방목인 『성화기축육년구월일생원진사시방(成化己丑六年九月日生員進士試謗)』의 권말 부록에 처음 이름이 보였다. 이후 띄엄띄엄 보이다가 1646년(인조 24) 식년시부터 거의 빠짐없이 기재되었다.

변천

사마방목에 의하면 양시 합격자는 16세기에는 1회 평균 15.5명, 17세기에는 8.5명, 18세기에는 5.8명, 19세기에는 1.7명으로 나타났다. 조선전기에는 상당수 인원이 해당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참고문헌

  • 최진옥, 『조선시대 생원진사연구』, 집문당, 1998.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people.aks.ac.kr/index.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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