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등산(楊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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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조선에 파견된 명의 무장.

개설

자는 개명(愷明)이고 아호(雅號)는 평산공(平川公)이다. 생몰연대는 자세하지 않다. 명나라 선부(宣府) 회안위(懷安衛) 사람이다. 정유재란 때 조선에 와서 매우 용맹하게 싸워 공을 세웠다.

가계

활동 사항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흠차협수동로참장(欽差恊守東路參將)도지휘사로 마병 1,200명을 이끌고 조선에 왔다. 당시 명군은 네 갈래로 길을 나누었는데 참장 양등산(楊登山)은 도사 설호신(薛虎臣)·총병 오유충·참장 왕국동(王國棟)·유격 진잠(陳蠶)·섭사충(葉思忠)·진인(陳寅)·파귀(頗貴)·총병 해생(解生)·유격 진우문(陳愚聞)·팽신고(彭信古) 등과 함께 마귀(麻貴)의 통솔을 받아 동쪽 길을 맡았다. 용감하고 전투를 잘했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반드시 앞장섰다. 직산(稷山) 부근 소사(素沙)에서 일본군 수백 명을 무찌르는 등 해생·우백영(牛伯英)·파귀 등과 함께 매우 용맹하게 싸웠으므로 ‘4장(將)’으로 일컬어졌다(『선조수정실록』 30년 9월 1일). 1598년 3월에 명으로 돌아갔다.

참고문헌

  • 『난중잡록(亂中雜錄)』
  • 『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 『명사(明史)』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