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현(陽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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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양덕현 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양덕현(陽德縣)은 1396년(태조 5)에 성립되어 조선후기 숙종 때는 평안도와 함경도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군사적 요충지로 주진(主鎭)을 삼아 성을 수축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평양부 양덕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양덕현은 1396년에 도평의사사에서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의 보고에 의거하여 고려의 양암(陽巖)과 수덕(樹德) 두 고을을 합쳐 설립하였다.

조직 및 역할

양덕현은 1396년에 처음 설치할 때 종6품의 감무(監務)를 두어 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이후 1413년(태종 13)에 지방행정 관서와 관리의 칭호를 개정할 때 감무를 종6품의 현감으로 고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으나 이후에 훈도를 폐지하였다. 종6품의 현감은 지방행정 관서인 현의 책임자로 수령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종9품의 훈도는 교관으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조선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소속 관원으로는 좌수 1명, 별감 2명, 중군 1명, 집사 2명, 기고관 2명, 병방 2명, 아전 26명, 지인(知印) 18명, 사령 17명, 군뢰(軍牢) 14명, 관노 60명, 관비 68명이 있었다.

변천

양덕현은 1396년에 고려의 양암과 수덕 두 고을을 합쳐 설립하였으며, 당시 두 고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취하여 양덕현이라 하였다. 이후 1410년(태종 10)에 양덕현성(陽德縣城)을 수축하였고, 숙종 때는 양덕이 평안도와 함경도의 사이에 끼어 있는 군사적 요충지임을 감안하여 양덕을 주진으로 삼아 토성(兎城)을 이에 소속시켰다(『숙종실록』 10년 6월 3일). 18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평양부 양덕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이존희, 「조선초기의 수령제도」, 『역사학보』30·31 합집,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