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역(良驥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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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문천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양기역(良驥驛)은 문천군 동쪽 5리(약 2㎞)에 위치하였다. 양기역은 고려시대로부터 존재했던 덕령역(德嶺驛, [德寧驛])과 조선초기에 신설된 고종역(高宗驛)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덕종역이 개명된 명칭이다. 양기역의 전신이었던 고려시대 덕령역은 삭방도(朔方道)에 소속되었고, 조선시대 양기역은 고산도(高山道)의 소속 역(驛)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양기역은 조선시대 함경도 문천에 위치했던 역이다. 양기역의 원래 이름은 덕종역이었다. 덕종역은 덕녕역(덕령역)과 고종역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역이다. 덕령역은 고려시대에 삭방도 소속으로 문주(文州: 현 문천)에 위치했던 역이다. 한편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고종역은 1396년(태조 5)에 문천에 신설된 역이다(『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문천군). 세조 재위 초년에 덕녕역과 고종역을 통합하여 덕종역이라 이름을 정하고, 그 위치를 고종역의 자리에 두었다. 그 후 1475년(성종 6) 성종의 생부(生父)인 덕종의 묘호(廟號)를 피하기 위하여 양기역으로 개명하였다.

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역들은 남쪽의 안변 지역으로부터 북쪽의 두만강 연안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길게 편성된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 운영되었다. 이 역들에 대한 역도(驛道) 편성은 몇 차례의 변동을 거친 후에 고산도(高山道), 거산도(居山道), 수성도(輸城道) 등 3개의 역도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함경도의 역들이 모두 이 3개의 역도로 편제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양기역의 전신인 덕녕역과 고종역은 모두 고산도 소속으로 기록되었으며, 문천군에 위치한 것으로 나와 있다(『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문천군). 양기역으로 개명된 후에도 여전히 고산도의 소속 역이었다.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에도 변함없이 양기역은 고산도에 소속되었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고산도는 대체로 남쪽의 안변에서 북쪽의 함흥 사이에 위치한 역들로 편성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양기역에는 상등마(上等馬) 2마리, 중등마(中等馬) 5마리, 하등마(下等馬) 16마리, 역리(驛吏)와 역노(驛奴) 600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양기역은 남쪽으로는 덕원·안변 방면, 북쪽으로는 고원 방면을 연결하는 한양~경흥간 간선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양기역에서는 남쪽으로 덕원 철관역(鐵關驛), 북쪽으로 고원 통달역(通達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양기역도 폐지되었다.

양기역의 위치는 현재 북한의 행정 구역으로 강원도 문천군 교성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정요근, 「조선초기 驛路網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한국평화문제연구소 공편, 『조선향토대백과사전』, 평화문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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