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野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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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에서 중기에 걸쳐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에 살던 여진족의 통칭.

개설

조선시대에 야인은 여진족과 동의어로 이해되어 왔다. 조선초기에서 중기에 걸쳐 야인은 건주여진을 비롯해 오도리·오랑캐·우디거 등의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통일된 정치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의 북쪽 국경 지대에 살면서 종종 소요를 일으켰다. 이에 조선은 야인에 대하여 회유하면서 한편 정벌하는 양면정책을 병행하였으나 야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15세기 중반에 조·명연합군의 건주여진 정벌을 계기로 조선과 건주여진 사이의 교통이 끊긴 후에 조선에서는 대개 두만강 이북의 여진을 야인으로 불렀다. 야인은 17세기 초에 건주여진의 누르하치에 의하여 모두 통합되어 후금(後金)으로 편입되었다.

내용 및 특징

명대(1368~1644)의 여진족은 흑룡강 유역 일대의 야인여진(野人女眞), 지금의 심양 일대인 송화강 유역에 거주하는 해서여진(海西女眞), 목단강 유역과 장백산 일대의 건주여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 측 사료의 분류이고, 명나라 사람들이 여진족 중에서 미개한 종족을 낮추어 부르던 ‘야인여진’과 『조선왕조실록』에서 이야기하는 ‘야인’은 구별해 사용해야 한다. 조선에서 사용한 ‘야인’은 넓은 의미로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모든 여진 부족을 통칭하지만, 16세기에 등장하는 ‘야인’은 대개 두만강 이북에 거주하던 여진 부족을 가리켰다. 이는 당시 조선이 직접 상대한 야인이 대개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유역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야인에 대하여 ‘회유와 정벌’이라는 두 가지 정책을 병행하였다. 야인을 입조(入朝)시켜 관직을 수여한 일이 회유라면, 야인이 국경 지역을 침범해 소요를 일으키면 출병해서 본거지를 소탕하는 일이 정벌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야인에게 만호(萬戶)나 부만호(副萬戶) 등의 관직을 주거나 물자를 제공하는 일이 자주 등장하였다. 한편으로 야인은 생필품을 조달하고, 조선 정부에 의하여 처단된 부족민의 복수를 위하여 조선 변경을 자주 침입하였다.

두만강 유역에 살던 오랑캐·우디거·오도리·건주여진 등이 북부 국경 지대에 들어와 빈번히 노략질하자 조선에서는 1410년(태종 10)과 1460년(세조 6)에는 오랑캐를, 1433년(세종 15)에는 건주여진을, 1491년(성종 22)에는 우디거를 정벌하였다. 이 시기에 세종이 4군 6진의 행정구역을 설치해 북방의 방비를 강화한 것은 가장 적극적인 야인 대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과 요동이 인접한 곳에 거주한 건주여진에 대한 정벌은 명과 조선이 합동군사작전으로도 이루어졌다. 1467년(세조 13)과 1479년(성종 10)의 두 사례가 있는데, 명군(明軍)이 서쪽에서 건주여진을 공격하면 조선군은 남쪽에서 진군해 응원하는 형세로 전개되었다.

변천

여진족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남하해 야인여진은 흑룡강 하류 일대로, 건주여진은 소자하(蘇子河)와 파저강(婆猪江: 현 혼하) 유역으로, 해서여진은 요녕성(遼寧省) 개원(開原)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여진의 세 부족은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야인여진은 1433년에 가장 세력이 강성한 건주여인의 추장 몽케테무르[猛哥帖木兒]를 살해하고 한때 기세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건주여진은 큰 곤경을 겪기도 하였으나, 1583년에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한 후로 계속 성장해 다른 여진 부족을 위협하였다. 1593년(선조 26)에는 해서여진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혼인동맹을 맺기도 하였으나, 후금의 건국(1616년) 이전까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만주 일대의 거의 모든 여진 부족을 통합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과 야인의 관계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후금의 만주 통일 과정에서 조선으로 피신해 들어온 야인을 송환하는 문제가 한동안 지속되었으나,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로는 조선의 역사에서 야인이라는 단어가 사실상 사라졌다.

참고문헌

  • 계승범,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휴머니스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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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남, 「16세기 조선과 야인 사이의 모피 교역의 전개」, 『한국사연구』 15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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