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연관(押宴官)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과거 급제자, 일본과 유구국(琉球國)의 사신, 야인(野人)을 위해 베푸는 연회를 주관하던 임시 관직.

개설

압연관(押宴官)은 과거 급제자를 축하해주려는 목적으로 베풀었던 은영연(恩榮宴), 일본이나 유구국 등에서 조선을 방문한 외교 사절을 위해 열었던 사신연(使臣宴)에서 연회를 관리하고 주재하였다.

담당 직무

압연관이 하는 일은 이웃 나라의 사신을 대접하는 것과 연계되어 있었다. 연회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이끄는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국가 간의 민감한 외교 사안을 왕에게 전달하고 매끄럽게 처리하기도 하였다.

이웃 나라의 사신이 조선에 왔을 때 베푼 연회에서 압연관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는 『국조오례의』 ‘예조연인국사의(禮曹宴隣國使儀)’에 자세히 나와있다. 압연관의 좌석은 판서(判書)와 함께 동쪽 벽에 설치하되 서쪽을 향하였다. 사신이 도착하면 좌석에서 일어나 나아가 섰고, 사신의 행동에 일일이 응수하면서 답례로 절을 하거나 술을 청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등이 압연관 역할을 하였다. 태종대의 은영연에서는 성석린(成石璘)·조영무(趙英茂)·이직(李稷) 등이, 세조대 은영연에서는 정창손(鄭昌孫)·윤사로(尹師老)·홍달손(洪達孫) 등이 압연관을 맡았다(『태종실록』 7년 4월 28일), (『태종실록』 14년 3월 29일), (『세조실록』 3년 3월 8일), (『세조실록』 6년 8월 17일).

중종대 왜인을 위한 잔치에서는 김수동(金壽童)·성희안(成希顔)·송일(宋軼)·김응기(金應箕)·신용개(申用漑)·남곤(南袞)이 압연관으로 활약하였다(『중종실록』 7년 2월 15일), (『중종실록』 7년 윤5월 27일), (『중종실록』 7년 6월 18일), (『중종실록』 10년 1월 6일), (『중종실록』 12년 8월 14일), (『중종실록』 17년 3월 25일).

변천

세종대에 왜인과 야인을 위한 사신연에서 압연관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조선의 사신이 상대국을 방문했을 때 설행되는 연회에는 압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세종실록』 26년 5월 25일).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