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이씨(安嬪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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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22년(광해군 14)~1693년(숙종 19) = 72세]. 조선의 17대 왕인 효종(孝宗)의 후궁.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의(參議)를 지낸 이응헌(李應憲)이며, 어머니는 알려지지 않는다.

효종의 후궁

이안빈(李安嬪)은 효종이 봉림대군(鳳林大君)이었던 시절 첩으로 들어와 봉림대군이 청의 볼모로 심양(瀋陽)에 끌려갔을 때 따라가 그를 보필하였다.[『국조보감』 권89 철종조3] 그러나 효종은 왕위에 오른 후 그녀에게 바로 봉작을 내리지 않다가,(『숙종실록』 12년 12월 14일) 1656년(효종 7)이 되어서야 숙원(淑媛)의 첩지를 내렸다.(『영조실록』 2년 11월 16일),(『영조실록』 3년 2월 6일),[『승정원일기』영조 3년 2월 6일]

당시 이안빈의 생활비는 호조에서 나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것만으로는 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세자였던 현종(顯宗)이 효종에게 궁중의 남는 물자로 이안빈의 부족한 생활비를 보태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효종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며, “네가 다른 날에 은혜를 베풀도록 남겨두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30 「효종조고사본말(孝宗朝故事本末)」] 이 때문이었는지 실제 이안빈은 효종 사후 현종에 의해 1661년(현종 2) 숙용(淑容)으로 올랐으며,[『승정원일기』현종 2년 윤7월 8일] 3달 후 다시 숙의(淑儀)로 올랐다.(『현종실록』 2년 10월 20일),[『승정원일기』현종 2년 10월 20일] 이후 귀인(貴人)을 거쳐 1686년(숙종 12) 정1품 빈으로 승격되어 안빈이라는 작호를 받았다.(『숙종실록』 12년 5월 27일),[『승정원일기』숙종 12년 5월 27일].

이안빈은 1693년(숙종 19) 10월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72세였다. 숙종은 이안빈의 장례를 선조(宣祖)의 후궁이었던 한온빈(韓溫嬪)의 예에 따라 거행하게 하였다.[『승정원일기』숙종 19년 10월 23일] 또한 숙종은 이안빈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특별히 부조지전(不祧之典 : 국가에 큰 공적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모시게 하는 특전)을 명하고 본가의 후손으로 하여금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국조보감』 권89 철종조3]

1796년(정조 20) 8월 9일 정조(正祖)는 제수로 쓸 돈과 쌀, 집을 주도록 하였고, 철종(哲宗) 대인 1859년(철종 10) 10월 29일에는 이안빈의 사우(祠宇)를 수리하였다.

묘소와 후손

이안빈의 무덤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66번지에 있으며, 1991년 사적 제66호로 지정되었다.

이안빈은 효종과의 사이에서 1녀를 두었는데, 숙녕옹주(淑寧翁主)이다. 1662년(현종 3) 금평위(錦平尉)박필성(朴弼成)과 혼인하여 딸 한 명을 두었으며,(『현종실록』 3년 4월 10일) 1668년(현종 9) 두역(痘疫)을 앓다가 2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현종개수실록』 9년 5월 20일),[『승정원일기』현종 9년 5월 20일]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국조보감(國朝寶鑑)』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효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