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태(阿魯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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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초 몽골에서 구일리치·본야시리·아다이 3대에 걸쳐 태사를 지냈던 인물.

개설

아로태는 몽골어 아룩타이(Aruγtai)의 한자어 표기이다. 1403년부터 1434년까지 차례로 본야시리([本雅失里], Buniyasiri), 아다이([阿台], Adai)를 대칸으로 옹립하면서, 스스로를 ‘대원조태사(大元朝太師)’라고 칭하며 실권을 행사하였다. 몽골 사료에 의하면 아룩타이는 어렸을 때 오이라트의 에세후(Esekü) 칸 궁전에서 가노(家奴)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가계

아수드(Asud) 부(部) 사람이다.

활동 사항

아룩타이는 구일리치([鬼力赤], Guilichi) 칸 시기에 지원(知院) 직을 맡았으며 1408년 구일리치 칸이 죽자 본야시리를 대칸에 옹립한 후 스스로 태사가 되었다.

1409년에 오이라트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본야시리 칸과 함께 헤를렌(Kerülen) 강으로 옮겨 지냈다. 1410년에 본야시리와 함께 명나라 100,000대군을 몰살시켰다. 그러나 같은 해 명나라 영락제의 공격을 피하여 본야시리와 헤어져 아룩타이는 동쪽으로 달아났는데 2년 뒤 본야시리는 오이라트의 마하무에게 살해되었다. 이후 아룩타이는 명나라에 말을 바치며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1413년 명나라는 아룩타이를 화녕왕(和寧王: 카라코룸의 왕이라는 뜻)에 봉하고 금백(金帛)을 내렸다. 이는 명나라가 몽골의 여러 세력을 서로 경쟁하도록 한 분열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오이라트의 마하무와 그에 의해 옹립된 델벡([答里巴], Delbeg) 칸과 경쟁하였는데 1416년 그들을 습격하여 패배시키는 등 세력을 확대시켰다. 1422년 명나라 군대가 아룩타이를 치기 위하여 몽골 땅으로 진군하였지만 그가 북쪽으로 피하였기 때문에 명나라 군대가 많은 전획물을 얻고 돌아갔다.

이와 관련하여 실록에서 아로태가 확인되는데 명나라 황제가 9월 8일에 북경에 돌아와서, 아로태(阿魯台)와 올량합(兀良哈) 등을 정벌하여, 이를 이기고 회군하여 천하에 조서(詔書)로 포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4년 11월 7일).

아룩타이는 1426년 칭기즈칸의 동생의 후손인 아다이를 세워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후 아룩타이는 오이라트에게 여러 차례 패하여 부하들을 이끌고 동쪽 우량하이로 가서, 요동 변경에서 주둔하며 유목 생활을 영위하기도 하였다. 1434년 톡토부하 칸에게 패하여 모납산(母納山)에 피신하였다가 곧 오이라트의 토곤 태사에게 피살되었다.

참고문헌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 김장구 역주, 『역주 몽골황금사』, 동북아역사재단, 2014.
  • Эрдэнэ тунамал нэртшастир (『에르데니 투누말이라는 역사』)
  • Саган сэцэн, Эрдэнийн товч, 1961. (사강 세첸, 『몽골원류(蒙古源流)』, 1961.)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관계망

[[분류:몽골[蒙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