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률(審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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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조에 소속된 율학(律學)의 종8품 관직.

개설

심률(審律)은 1466년(세조 12)에 사율원(司律院)을 율학으로 개칭하면서 둔 관직으로 법률, 소송 등의 심사를 담당하였다. 정원은 2명으로 율학 출신의 기술관이 임명되었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3년(태조 2)에 형조에 율학을 설치하였다(『태조실록』 2년 10월 27일). 율학은 형조 속사(屬司)의 하나로 1434년(세종 16)에 사율원으로 개칭했다가(『세종실록』 16년 8월 26일), 1466년에 세조가 관제를 개혁할 때 다시 율학으로 바꾸면서 명률(明律)을 소속시켰다(『세조실록』 12년 1월 15일). 조선시대 법전 운영의 전문적인 실무와 교육을 담당한 기관인 율학청(律學廳)에는 종6품 율학교수(律學敎授), 별제(別提), 종8품의 심률을 비롯해 종7품 명률, 정9품 율학훈도(律學訓導), 종9품 검률(檢律)을 두었으며, 8도 및 제주에는 검률 각 1명을 두었다. 8도에 파견된 율관은 각 지방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조사하여 죄를 다스리고 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심률은 정직이 아닌 임시 체아직(遞兒職)으로 1년에 두 차례 걸쳐 실시되는 인사행정인 양도목(兩都目)으로 근무 일수 514일이 차면 한 품계를 올려주되 종6품이 되면 그 직에서 물러나도록[去官] 하였다. 그 직에 계속 근무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때부터 근무 일수 900일이 차면 한 품계를 올려주고 정3품에서 그치도록 규정하였다. 관직을 떠나지 않는 자는 모아서 재능을 시험하였다. 율학 취재 시험에서 점수가 가장 높은 자는 정식으로 관직을 주고, 그다음으로 점수가 높은 자는 거차자(居次者)라고 하여 지방관으로 보냈다.

변천

심률은 1466년에 세조가 관직을 개혁할 때 사율원을 율학으로 개칭하면서 설치한 관직이다. 『경국대전』에서는 2명을 두었으나 『속대전』에서는 1명을 감원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육전조례(六典條例)』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중인 연구』, 이회문화사, 1999.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번역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 이남희, 「조선전기의 율관」, 『한국학보』 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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