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질의(心經質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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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 『심경부주(心經附註)』에 대한 퇴계 이황(李滉)의 강론을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다.

개설

이 책은 73장에 달하며, 공간된 적은 없고, 『간재선생속집(艮齋先生續集)』에 실려 있다. 구독(句讀), 문의(文義), 고사(故事), 명물(名物), 의론(議論) 등에 관해 자세하게 주석을 달아 놓았다. 이덕홍이 이황의 강의를 직접 들으면서 기록해 놓은 가장 방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학문적 가치는 매우 크며, 후대에 나온 거의 모든 주석서들이 이에 바탕하고 있다.

다만 이 내용들이 이황의 교정을 거친, 그야말로 이황의 정론인가 하는 점에서는 상이한 견해가 있어 왔다. 예컨대 송시열(宋時烈)이 쓴 『심경석의(心經釋疑)』와 『간재행장(艮齋行狀)』에는 『심경질의(心經質疑)』가 이황의 교정을 받아 내용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였으나, 이만운(李萬運)의 『심경강록간보서(心經講錄刊補序)』와 김종덕(金宗德)의 『심경강록간보후지(心經講錄刊補後識)』에는 이황의 교정을 받지 못하였으며, 후인들이 잡다하게 의견을 첨입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차이에는 약간의 정치적 입장도 개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보이는 영남 출신의 김방걸과 김성유가 송시열과 그의 문인 이여와 『심경질의』의 신빙성을 둘러싸고 벌인 논란 등에서 이런 점을 찾을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퇴계 이황이 정민정(程敏政, 1445~1499)의 『심경부주』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그의 제자인 이덕홍이 정리하여 편찬한 것으로, 『심경부주』에 대한 조선 최초의 주석서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위치와 중요성이 있다. 이덕홍은 이황 만년에 그의 문하에 나아가 여러 경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그 중 하나로 정민정의 『심경부주』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심경질의』를 편찬하였다. 원래 『심경질의』는 어록체(語錄體)로 국한문 혼용이었으나, 뒷날 이덕홍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그의 외증손인 김만휴(金萬休)가 내용을 축약하고 순한문체로 바꾸었는데, 그것만 지금 전한다.

퇴계 이황이 높이 받들어 연구한 『심경부주』는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효종·숙종 때에 경연이라는 일종의 왕과 함께 하는 수업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숙종은 송시열에게 『심경부주』의 주석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송시열이 퇴계학파가 아니어서, 이황의 의견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황의 뒤를 이은 제자들과 마찰이 생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간재선생문집』 속집 권3에 실려 있는 『심경질의』는 뛰어난 해설과 정연한 이론으로 잘 알려져 널리 필사되었다.

서지 사항

1책(144쪽)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10행 20자, 상하2엽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19.5×16.4㎝이며, 규장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정민정의 『심경부주』 ‘서(序)’로부터 맨 마지막 『존덕성재명장(尊德性齋銘章)』에 이르기까지 그 목차 순서에 따르고 있으며, 여기에다 이황의 ‘심경후론(心經後論)’을 덧붙여 그 내용 가운데 인물이나 지명, 자의(字意) 등과 중요하거나, 문제가 되는 개념과 내용을 표제어로 내세워 해설하고 있다. 이 때 인물에 대해서는 주로 ‘일통지(一統志)’ 등을, 자의에 대해서는 주로 『운회(韻會)』를 참고하였다.

내용에 대한 해설은 이황에게서 수강한 것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심학도(心學圖)’나 인심(人心)·도심(道心)에 관한 내용은 이황과 조목(趙穆) 간에 오간 문답 내용을 많이 포함시켰다. 이덕홍이 『심경질의』에 서문이나 발문 혹은 자신의 안(按)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이황이 만년에 도산으로 돌아와 『심경부주』를 강론할 때 이덕홍과 더불어, 조호익(曺好益), 이함형(李咸亨) 등도 함께 강의를 듣고, 『심경질의고오(心經質疑考誤)』, 『심경강록(心經講錄)』과 같은 저술을 남겼다. 조호익의 『심경질의고오』는 바로 이덕홍의 『심경질의』 내용 가운데 틀렸다고 생각되는 내용 145곳을 바로잡고자 저술한 것이며, 이함형의 『심경강록』은 자신의 『수강록』과 이덕홍의 『심경질의』를 합본한 것으로, 원래 이것을 스승인 이황에게 올려 품정(稟正)을 받고자 하였으나, 이황이 죽게 되어 미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이황 사후 『심경부주』는 이황과 그의 문하에서 크게 중시한 결과 ‘성군(聖君)’의 교과서로 존숭되어, 마침내 기호 율곡학파의 영수였던 송시열이 왕명을 받들어, 『심경석의』를 저술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는 이덕홍의 『심경질의』를 바탕으로 하고, 기호 율곡학파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포함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심경부주』에 대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간에 논란이 크게 일어났으며, 마침내 퇴계학파에서는 『심경부주』에 대한 이황의 정본화 작업의 결실로 이상정(李象靖)과 그의 제자인 김종덕(金宗德)의 손을 거쳐, 『심경강록간보(心經講錄刊補)』를 간행하게 되었다. 이처럼 『심경질의』는 『심경부주』에 대한 이황의 견해를 비교적 잘 담고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심경부주』에 대한 최초의 주석서로서 여러 학파와 학자들 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심경부주』에 대한 이황의 견해를 비교적 잘 담고 있는 책이자, 최초의 주석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송희준 편, 『심경경주해총편(心經註解叢編)』, 학민출판사, 1990.
  • 이재곤, 「艮齋 李德弘의 註釋書 撰述과 壬亂 克服意識」, 안동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 전재동, 「艮齋 李德弘의 『四書質疑』 硏究-異本 檢討와 『論語』 解釋을 中心으로-」, 『퇴계학논집』 제1호, 퇴계학연구원, 2008.
  • 홍원식, 『심경부주와 조선유학』, 예문서원, 2008.
  • 홍원식 외, 『조선시대 심경부주 주석서 해제』, 예문서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