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량수군(身良水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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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에 양인인지 천인인지 불분명하여 사재감(司宰監) 수군(水軍)에 귀속된 자를 부르던 말.

내용

고려말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신분 질서도 동요되어 양인(良人)인지 천인(賤人)인지 불분명한 자가 많아졌으므로, 조선 건국 이후 양·천(良·賤)의 판정이 시급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였다. 그리하여 1397년(태조 6)에 양천을 판정하되 양천이 불분명한 자는 신량역천(身良役賤)으로서 관사(官司)의 사령(司令)에 속하게 하였다. 그리고 1405년(태종 5) 9월에는 양천이 불분명한 자는 사재감 수군에 충군(充軍)하였는데, 이와 같이 사재감 수군에 귀속된 자를 신량수군이라 불렀다. 사재감은 어량(魚梁), 산택(山澤) 등을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사재감 수군은 어량, 산택에서의 역사(役事), 전함의 건조와 수리 등에 동원된 수군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 사재감 수군, 즉 신량수군은 1415년(태종 15)에 보충군(補充軍)으로 이속되었다. 이와 같이 신량수군이 보충군으로 이속된 것으로 보아 신량수군의 신분은 일반 수군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례

議政府上干尺白冠等人女孫立役之法 啓曰 其在前朝 身良役賤者 唯琴尺之女 定爲妓役 其餘皆無役 國初 屬司宰監身良水軍之女 皆不定役 乞以干尺·白冠等人女孫 自壬辰年受敎以後從良者 依前朝判定百姓例立役 從之(『태종실록』 13년 8월 30일)

참고문헌

  • 李載龒, 「朝鮮初期의 水軍」, 『朝鮮初期社會構造硏究』, 一潮閣,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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