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試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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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와 무과, 생원진사시와 같은 각종 과거 시험을 보는 날짜.

개설

조선왕조 초기까지는 모든 과거를 식년 정월에서 5월 사이에 마쳤으나, 촉박한 일정 때문에 시험을 관리 운영하는 데 번잡할 뿐 아니라 농사철에 움직이게 되어 농사에도 방해가 되었다. 이에 1472년(성종 3)부터 식년 전해인 상식년 가을에 초시를 보고 해를 넘겨 복시를 보도록 하였으며, 이 시일이 법제화되어 『경국대전』에 반영되었다. 시험일을 확정하는 것은 예조의 소관으로 왕의 재가를 받아 결정하였다. 정기적인 시험인 식년시는 시일이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으나 증광시의 경우와 별시의 시험 일자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 정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초에 과거는 식년시 위주로 시행하였다. 증광시는 태종 즉위 기념으로 처음 설행된 이후 선조 전까지는 왕의 즉위 원년에만 실시하였고, 문무과에만 있었던 별시도 자주 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子)·오(午)·묘(卯)·유년(酉年)의 식년이 되면 문무과의 초시·복시·전시와 생원진사시의 초시·복시, 잡과의 초시·복시가 모두 정월에서 5월 사이에 시험을 마쳤다. 이런 촉박한 일정 때문에 시험을 관리 운영하는 데 번잡할 뿐 아니라 농사철에 움직이게 되어 농사에도 방해가 되었다. 1472년(성종 3)에 중국의 예에 따라 식년 전해인 인(寅)·신(申)·사(巳)·해년(亥年)의 상식년 가을에 초시를 보고 식년에 복시를 보도록 하였다(『성종실록』 3년 4월 8일). 이는 법제화되어 『경국대전』에 반영되었다.

내용

과거를 시행할 때에는 식년시와 증광시에 상관없이 문과와 무과, 생원진사시, 잡과를 모두 설행하였다. 식년시의 초시는 상식년 가을에 보고, 복시와 전시를 식년 봄에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생원진사시의 초시는 대개 8월 보름 후에 보고, 문과·무과의 초시는 9월 초순에 치르는 것이 상례였다(『중종실록』 30년 12월 25일).

식년시는 정기적인 시험이어서 시험일 예측이 가능하였다. 이에 비하여 증광시는 경사가 있을 때 시행하는 부정기적인 시험이었다. 보통 식년시와 같은 해에는 실시하지 않으나 때로는 같은 해에 설행되기도 하였다. 1612년(광해군 4), 1615년(광해군 7), 1624년(인조 2), 1660년(현종 1), 1721년(경종 1), 1735년(영조 11), 1777년(정조 10)과 같은 경우에는 식년시와 증광시를 같은 해에 설행되었다.

『경국대전』 등 법전에는 상식년 가을에 초시를 보고 식년 봄에 복시를 실시한다고만 명시되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왕이 문무과 전시와 방방에 참석하거나 생원진사시 방방에 참석하였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으나 이를 통해서는 시험일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식년시라 해도 모든 과거를 다 설행하면 시기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험일이 몰리게 되었다. 1480년(성종 11)의 예를 보면 3월 2일에 생원진사시의 방방을 하였고, 3월 29일에 무과, 3월 30일에는 문과에서 사람을 뽑았다(『성종실록』 11년 3월 2일)(『성종실록』 11년 3월 29일)(『성종실록』 11년 3월 30일). 실제 시험일은 알 수 없으나 시험 결과 발표가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시험 날짜도 그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생원진사시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에는 인조대부터 시험 날짜를 밝히기 시작하여 효종대 이후에는 거의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식년시는 상식년 8월에 초시, 식년 2월에 복시를 치르는 경우가 50%가량 되었다. 상식년과 식년에 걸쳐 실시할 경우 6개월여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초시와 복시를 식년에 함께 치르는 경우도 40% 정도 되는데 초시와 복시의 실시 시기는 2~3월, 8~9월, 8~10월 등으로 한 달(1개월) 내에 치러져 일정이 촉박하였다. 전체적으로 초시의 대부분은 8월에 실시하였고, 복시는 2월에 가장 많이 실시하였고 3월과 9월에 시행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식년시 초시는 8월 11일, 18~20일 사이에 주로 실시하였다. 특히 영조 이후에는 8월 20일에 실시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복시는 18~22일 사이가 가장 많았다.

초시를 상식년에 하든 식년에 하든 결과적으로 초시는 8월 18~20일 사이, 복시는 2월 18~22일 사이가 가장 많았다. 18세기 후반에 가면 초시는 주로 8월 20일, 복시는 2월 20일경에 시행하였다.

증광시는 시험 일자가 일정하지 않으나 한여름과 한겨울을 피하여 시행하였다. 초시는 5~6월과 11~12월을 제외하고는 전 기간에 걸쳐 실시하였으나 8월과 2월에 가장 많이 실시하였다. 복시는 12월을 제외하고 전 기간에 걸쳐 있으나 3~4월과 9~10월에 가장 많이 실시하였다. 초시가 8월이면 복시는 9~10월, 초시가 2월이면 복시를 3~4월에 실시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식년시는 초시와 복시의 간격이 5~6개월이 되나 증광시는 1~2개월 안에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생원시와 진사시는 하루걸러 치르는데 진사시를 먼저 보고 생원시를 나중에 보았다. 그러나 조선초에는 생원시와 진사시의 회시를 동시에 행하지 않았다. 생원시는 예조와 성균관, 진사시는 예조와 집현전이 주관하여 별도로 시험을 치렀다. 방방(放榜)과 유가(遊街)에서뿐 아니라, 먼 곳에서 온 유생들이 여러 날 머물러야 하는 폐단이 있게 되자 1453년(단종 1)에 시험을 예조와 집현전·성균관이 공동으로 관장하고 시험도 하루걸러 치르고 같은 날 방방하도록 하였다(『단종실록』 1년 1월 24일). 이후부터 과거제가 폐지된 1894년(고종 31)까지 진사시를 먼저 치르고 하루 지난 뒤에 생원시를 치렀다.

식년시와 증광시 외에 문무과에만 실시하였던 각종 별시(別試)가 있었다. 알성시(謁聖試)·정시(庭試)·별시, 외방별시(外方別試), 춘당대시(春塘臺試) 등이었다. 외방에서 치르는 외방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에서 치렀다. 각종 별시를 식년시나 증광시와 같은 해에 실시할 경우 1년에 2건 이상의 과거가 치러진 셈이었다. 후기로 가면 별시를 자주 설행하여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1624년(인조 2)의 경우 공주정시(公州庭試)·정시·증광시·알성시·식년시를 모두 한 해에 치렀다. 1728년(영조 4)의 경우에도 춘당대시·평안도별시·별시·정시를 한 해에 실시하였다. 별시에는 초시인 향시가 없기 때문에 식년시와 증광시를 같은 해에 시행할 때 별시에 응시하였던 지방의 유생들이 돌아가 향시에 응시하려면 시간이 촉박하여 지장을 받게 되었다. 시일을 정할 때는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여 정하였다.

시험일을 정하는 것은 예조의 소관으로 왕의 재가를 받아 결정하였다. 정기적인 시험인 식년시는 시일이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으나 증광시의 경우와 별시의 시험 일자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 정하였다.

변천

조선건국 초에는 과거의 모든 과정을 정월에서 5월 사이에 실시하였다. 1472년(성종 3)에 시간이 촉박한 데서 오는 폐단을 시정하고자 정기적인 시험인 식년시의 경우 상식년(寅ㆍ申ㆍ巳ㆍ亥年) 가을에 초시를 보고 식년에 복시를 보도록 하였다(『성종실록』 3년 4월 8일).

식년시 초시는 8월 18~20일 사이에 주로 실시하였다. 특히 영조 이후에는 8월 20일에 실시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복시는 2월 18~22일 사이가 가장 많았다.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초시는 주로 8월 20일, 복시는 2월 20일경에 시행하였다.

비정기적 시험인 증광시와 각종 별시는 조선후기로 갈수록 설행 명분이 다양해지고 자주 설행하였다.

참고문헌

  • 국학자료원, 『司馬榜目』, 1990.
  • 원창애 외, 『조선시대 과거제도 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 최진옥, 『조선시대 생원진사연구』, 집문당,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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