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기원(崇禎紀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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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의 즉위년인 1628년을 일컫는 말.

개설

숭정(崇禎) 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의 연호이다. 의종의 재위 기간은 1628년에서 1644년(인조 22)까지로, 숭정기원은 의종이 재위하기 시작한 1628년을 말한다. 조선후기 지식인들은 후금 즉 후일의 청이 명나라를 물리치고 중국의 주인이 된 뒤에도 오랑캐의 나라라며 청나라를 부정하였다. 그러면서 여전히 한족의 명나라를 정통 중화왕조로서 인식하였다. 따라서 명나라의 정통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청나라 황제들의 연호를 기록하는 대신에 숭정기원을 사용하였다.

내용 및 특징

숭정기원이라고 할 경우, 숭정 연간이 아닌 그 후대를 가리켰다. 가령, ‘숭정기원후재신유(崇禎紀元後再辛酉)’라고 문서에 기록되어 있을 경우, 숭정 연호가 시작된 1628년부터 두 번째 신유년인 1741년(영조 17)을 의미했다. 같은 방식으로 ‘숭정기원후삼을해(崇禎紀元後三乙亥)’일 경우 1628년에서부터 세 번째 을해년인 1755년(영조 31)을 의미한다(『영조실록』 31년 1월 28일). 이러한 방식으로 숭정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의종 황제의 시간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으며, 곧 명나라가 망하지 않고 조선 지식인의 의식세계에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물론 숭정기원은 조선 국가의 공식 기록에서는 쓰이지 못하였고 주로 사적인 비공식 문서에서 사용되었다. 숭정기원 사용은 조선후기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명의리론과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다. 명나라의 정통을 계승하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리정신이 숭정기원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변천

숭정기원 사용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김수홍(金壽弘), 박세당(朴世堂), 박윤원(朴胤源)과 같은 이들은 숭정 연호를 사용하는 데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김수홍은 그의 조부 김상용(金尙容)의 제문에 청나라성조(聖祖)의 강희(康熙) 연호를 사용하였고(『숙종실록』 7년 8월 23일), 박세당은 선조(先祖) 박상충(朴尙衷)의 비석을 세울 때 박세채(朴世采)와 ‘숭정(崇禎)’ 연호 사용 문제에 대해서 논쟁하였다. 박세당은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을 근거로 해서 이미 멸망한 나라의 연호를 억지로 끌어다 쓰는 전례는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박윤원은 숭정 연호는 시대가 오래되었으므로 제문의 경우 그냥 ‘유세차(維歲次)’라고 써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특히, 박윤원은 보수적인 성향의 노론 성리학자였다는 점에서 이 시기 변화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조성산, 『조선후기 낙론계 학풍의 형성과 전개』, 지식산업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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