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희(淳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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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남송(南宋) 대에 효종(孝宗)이 사용한 연호(1174년~1189년).

개설

중국 남송의 제 2대 황제인 효종이 사용한 3개의 연호 가운데 마지막 연호이다(1174년~1189년).

1161년 금(金)나라 해릉왕(海陵王)은 약 20년간 이어진 <소흥화의(紹興和議)>를 파기하고, 남송을 침공하였다. 그러나 이 침공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해릉왕의 폭정이 점차 심해지면서 황족인 완안옹(完顔雍)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해릉왕은 결국 살해되었으며, 이어 왕안옹, 즉 세종(世宗)이 다음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금나라의 침공을 받은 남송은 이를 수습하고자, 1162년 고종(高宗)이 효종에게 황위를 양위하였다. 그러면서 효종과 세종이 다시 화평(和平)을 맺었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정세는 안정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효종은 농촌의 경제 회복과 강남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개혁 정책을 실시하여 남송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편 조선(朝鮮)에서는 정치 · 사회 · 문화적 변화 및 자연 재해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예를 참조하였다. 순희(淳熙) 연호 또한 이러한 이유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한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성종실록(成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송사(宋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