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휘공주(淑徽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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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42년(인조 20)~1696년(숙종 22) = 55세]. 조선 제 17대 임금인 효종(孝宗)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장유(張維)의 딸로 효종의 정비(正妃)인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친오라버니는 조선 제 18대 임금인 현종(顯宗)이다. 부마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인평위(寅平尉)정제현(鄭齊賢)이다. 인조(仁祖)의 손녀이자, 숙종(肅宗)의 친고모이기도 하다.

출생 및 혼인 생활

숙휘공주(淑徽公主)는 1642년(인조 20) 효종과 인선왕후의 1남 6녀 가운데 4녀로 태어났다. 12세가 되던 1653년(효종 4) 정창징(鄭昌徵)의 아들인 정제현과 혼인하였는데, 정제현은 현종(顯宗) 때 우의정을 지낸 정유성(鄭維城)의 손자이기도 하다.(『효종실록』 4년 10월 2일),(『효종실록』 4년 12월 8일) 그러나 혼인 후 10년도 채 되지 않은 1662년(현종 3) 부마 정제현이 세상을 떠났고, 1685년(숙종 11) 아들 정태일(鄭台一)도 세상을 떠나면서 숙휘공주는 쓸쓸한 말년을 지내야 했다.

한편 숙휘공주는 아버지 효종과 오라버니 현종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효종은 숙휘공주의 시할아버지인 정유성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숙휘공주의 집을 매우 크고 화려하게 지어주었다.(『현종실록』 5년 11월 19일) 현종 또한 숙휘공주가 집에서 공사를 하자 이틀 동안 도방군(到防軍) 4백 명을 동원하여 공사에 투입하기도 하였다.(『현종실록』 1년 5월 24일) 그 외에도 흉년이 발생한 해에 집을 짓는다고 하여 탄핵을 받기도 하는 등 숙휘공주는 효종과 현종 대에 여러 차례 집과 관련하여 문제를 일으켰다.(『현종개수실록』 11년 8월 19일),(『현종개수실록』 14년 5월 13일) 숙종 대에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당쟁이 격화된 가운데 남인들로부터 서인의 편을 들던 언니 숙안공주(淑安公主), 숙명공주(淑明公主)와 함께 살해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숙종실록』 20년 4월 1일),(『숙종실록』 20년 5월 23일)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서인이 정권을 다시 잡으면서 숙휘공주는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1696년(숙종 22) 병이 깊어졌고, 조카인 숙종이 병문안을 청하였으나 그해 10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숙종실록』 22년 4월 20일),(『숙종실록』 22년 4월 25일),(『숙종실록』 22년 10월 27일) 당시 숙휘공주는 55세였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는며, 부마 정제현과 합장되었다.

숙휘공주와 부마 정제현은 2남 1녀를 두었는데, 1남은 정인상(鄭獜祥)으로 태몽으로 기린을 보았다고 하여 효종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2남은 정태일이다. 한편 정인상과 딸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숙종실록보궐정오(肅宗實錄補闕正誤)』
  • 『국조보감(國朝寶鑑)』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하곡집(霞谷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효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1.